[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어린 생각으로 하나님을 본다면,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어린 생각으로 하나님을 본다면,

봐도 자기 생각, 자기 차원대로 생각하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대로 크게 못 본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교육과 차원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 해를 ‘앞’에 놓고 보면, 아직 ‘한 해의 끝’이 멀고 까마득합니다.

그런나 2015년을 생각해 보면 한 해가 다 지나고 ‘맨 끝’에서 보니, 1년이 순간 지나갔지요?

올해도 동일합니다.

<시간>은 ‘제대로’ 써야 됩니다.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여유 부리며 흘려보내지 말고,

충분히 할 일을 하면서 미련 없이 충분히 써야 됩니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지 ‘제대로’ 됩니다.

<시간과 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입니다.

고로 우리가 <시간과 때>을 지켜야 역사하십니다.
<시간>에 대해서 ‘교육’받고, 절대 ‘시간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자료>가 있고 <기술과 능력>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못 하니,

꼭 ‘시간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시간의 축복>은 <시간>을 지켜야 <시간 축복>을 받습니다.
아무리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도,

아무리 잘할 수 있는 자료와 기술과 능력이 있어도,

<시간>을 지켜야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만사에 작고 큰 성공을 하려면, 꼭 ‘시간’이 들어갑니다.

꼭 ‘시간’을 지켜야 됩니다.

시간을 지키려면, 누구나 다 지킬 수 있습니다.
정말 지키려 하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시간을 못 지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시간을 지키는 데>는 그렇게 ‘큰 힘’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을 안 지키면 죽는다.
이 말을 명심하고,

올해 초반부터 꼭 <새벽 기도 시간, 삼위와 주와의 대화 시간>을 움켜쥐고

매일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올해는 <교육의 해>입니다.
그리고 교육받고 배워서 <차원을 높이는 해>입니다.

다른 말로 <솟아오르는 해>입니다.

만사에 다 차원을 높이는 이것이 올해 ‘횡재하는 조건’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도 한 차원 위에 있고,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주려고 하는 것>도 한 차원 위에 있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일수록, 거기에 ‘자기가 원하던 것’이 있고 ‘삼위가 주실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달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그 차원에 가면, ‘원하던 것, 기도하던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차원>을 높이려면, 꼭 배워야 합니다.
정말 충분히 알고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알려면,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서 주시는‘그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학문도 배우지만, 인생도 배우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의 뜻을 배우고 구원에 대해, 휴거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한 번 배우고 끝날 것이 아니라 성삼위와 주 앞에 어떻게 행하며,

어떻게 인생을 살며, 어떻게 신앙을 해야 하는지 늘 진지하게 배워야 합니다.
 
누구든지 늘 배워야 합니다.
배움을 멈추면 <차원>을 높일 수 없고,

<자기 주관>에 갇히고 <자기 수준>대로 행하다가 결국 <자기 길>을 가게 됩니다.

저마다 ‘자기가 고칠 것’이 무엇인지,

 ‘자기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차원 높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 것입니다.
<할 일>을 두고 행하지 않으면,

평생 그대로 있으니 그것을 꼭 고치고 행하기 바랍니다.

할 때 자기 혼자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두고 ‘하나님과 같이’ 해야 합니다.

<신앙의 삶>은 ‘마음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행하여 변화되고 만들면서 사는 삶’입니다.

음식도 ‘마음’으로만 먹고, 일도 ‘마음’으로만 하고,

공부도 ‘마음’으로만 하면서 사나요?

실제로 ‘육’을 가지고 행하면서 살지요?
우리의 삶은 ‘실제로 행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신앙>도, <차원을 높이는 것>도 행하면서 만들어야 합니다.
<신앙의 차원>을 높이기 위해 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도 아니고, 모험도 아닙니다.

누구나 배우고 행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행한 것을 가지고, 영원히 자기가 얻고 누리게 됩니다.

그러니 올해는 2단, 3단, 4단씩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언제부터요?

<시간>을 지켜야 성공한다고 했지요?
1월 첫째 주부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차원 높이기입니다.

올해는 ‘삼위일체의 형상’을 많이 닮도록

<차원>을 높여 각종으로 차원 높이는 해,

높이 솟아오르는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사랑과 감사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마태복음 25장 14-21절

『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할렐루야!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의 말씀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소질과 재질대로 달란트를 나누어주었다고 예수님이 비유했습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는

“참 잘했다.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구나.

바로 가서 하였구나.

바로 가서 장사함으로 이렇게 되었구나.

너는 나와 같이 기쁨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자.

참 잘하고 충성하였다. 작은 일이긴 하지만 충성하였구나.”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도

“수고했다.

재질과 소질들을 열심히 발휘해서 또 달란트를 남기었구나.

잘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자.”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왜 한 달란트 갖고 왔는고 하니,
“주인은 이럴 줄 알고 내가 이렇게 대했습니다.”


“너는 나를 오해했구나.

나는 수고도 안 하고 애씀도 안 하고 모으지도 않고 생기는 줄로 생각했어?

나도 남기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잘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며 커지기를 원하는 사람인데...

나를 오해하였도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통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받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는 너의 행위대로 바깥에 나가서 바깥세상에서 살아라.” 그랬습니다.

이래서 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이 이야기로 인해서 금년도 우리를 회고합니다.

한 해를 회고해 보면 여러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개인, 가정, 민족, 세계적으로 볼 때 각 나라들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깨달은 일들, 겪은 일들을 보면 보람 있는 일도 많았고,

너무 바빴고,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 눈물겨운 것도 많이 있었고,

앞이 캄캄할 때도 있었고,

그리고 또 태양같이 눈부시게 찬란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었습니다.
개인, 가정, 민족, 세계를 하나님이 철저히 지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 모든 고통 속에서 하마터면 크나큰 함정에 빠져서

그저 고생들을 엄청나게 했을 것인데

그런 세계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셨고, 동행해 주셨습니다.

서산마루까지 우리를 비추는 태양처럼 지키시고

영의 능력으로 동행하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쳐다보며 지켜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은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한 말은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기도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러하겠다.” 하고 마음으로 깨달음이 오면 지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은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은 실수를 않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수를 많이 하는데 하나님은 실수를 않고 하니까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기술자들도 실수하고 전문가들도 실수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수를 안 하시니까 너무 좋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마음 놓고 맡겨놔도 하나님은 한 번도 실수를 안 하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또 한 사람에 천사들 다섯 명, 여섯 명씩 배치시켜 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도 살피시니까 실수를 안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무조건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 주는 것을 따라서 그전에 실수한 것을 다시 복직하고 또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실수해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용납하시고 함께하시고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언제?

과거 1년 동안 그렇게 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1년을 두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었는고 하니,

지혜를 주고 지식을 주고 부지런함을 주고 힘든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함께해서 일어나게 만들고 뛰게 만들고

이런 일들을 계속 암암리에 역사를 은밀히 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365일 동안 존재하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1년을 하루같이 이렇게 보냈습니다.

태양이 지듯이.
서산마루에 태양이 지금 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매일 겪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1년 치를 크게, 365일치의 큰 해가 지금 지는 날입니다.

1년 동안 여러분들, 아주 수고하고 참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함께하심이 컸다는 것을

일일이 보고 겪었기 때문에 말을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고 겪은 것을 깨닫고 말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고하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벗어나 가나안 복지를 가게 되었을 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홍해 바다의 죽음의 고비를 건너왔을 때를 돌아봐라.

어떤 곳에서 이끌어냈나.

어떻게 왔지?”


자기들이 홍해 바다 물을 가른 것도 아니고 물을 말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이 못한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해 주셨고

인간이 한 것도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하게끔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고 계셨더라는 것입니다.

올 한해 건강을 지켜주시고, 여러 사고 나는 곳에서 지켜주시고,

배고프지 않게 먹여 주시고,

연속적으로 말씀을 듣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환난과 역경 중에도 늘 사랑하면서 해 왔고, 감사하면서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금년도는 사랑과 감사의 해로 매듭을 짓게 되었습니다.

금년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심이 심히 크고 많았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세계 각 나라, 각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뛰고 달리면서

젊음을 또 한 해에 묻고 가는 여러분들,

오늘 주일말씀과 같이

“잘 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으로 또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같이 참여해서 또 살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그동안 수고했어요.
이제 다음 만나는 새로운 해에 또 멋있게 맞고,

뛰고 달리면서 손을 잡고 한 해를 또 맞고 가기를 바랍니다.
온 세계의 여러분들, 모두 모두 어려운 환경을 이기면서 담대하게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감동의 시대다. 기분 좋게 해 주는 시대다. 생각의 시대다. 이때 자기 몸을 가지고 책임을 해라.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잠언 1장 6절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기억하기 좋고, 사용하기 좋고, 행하기 좋은 지혜의 잠언을 전하겠습니다.

<감동되고 흥분되고 기분이 좋을 때의 생각>과 <평소의 생각>은 다릅니다.

<감동되고 흥분되고 기분 좋을 때> 해야 합니다.
그때는 ‘뇌도, 마음도, 생각도, 몸도 날아다닐 때’로 그때 하면 잘해집니다.

생각났을 때 해야, 잊지 않습니다.
<뇌>는 한 번 잊어버리면, 아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두 겪어 봐서 알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 제대로 봐야 합니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형상도 모양도 사라집니다.
<눈>으로 볼 때 ‘제대로 뇌에 입력하기, 기억하기’입니다.
볼 때 ‘눈여겨보기’입니다. 슬쩍 보면 봐도 긴가민가합니다.

<눈>은 <뇌>와 ‘한 짝’이 되어 기억을 합니다.
매일 봐도 그 형상이 기억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사진’을 보십시오.

<뇌>는 한 번 보면, 그 형상을 훤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을 보다가 다른 사람을 보면, 그쪽으로 형상이 뒤바뀝니다.
얼굴의 형상을 잊었다가도 사진을 보면 ‘이름’이 생각나고 ‘형체’가 생각납니다.


성경도, 말씀도 그러합니다.

한 번만 보면, 훤히 기억하지 못하니 ‘조금씩이라도 매일 보기’입니다.
최고의 방법은 <말씀>을 생각에서 떼지 말고

정기적으로 생각하면 바로바로 생각납니다.
               
잊으면 죽는다.
잊으면 죽는다는 말은 ‘뇌에서 사라져 버린다.’ 함입니다.
잊지 말라고 하지만 말고, ‘잊지 않도록 생각하기’, ‘잊지 않도록 행하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잊고 삽니다.
그러나 ‘잊고 사는 자’만 손해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어느 날>에 ‘그동안 원하던 것’을 주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기가 삼위일체를 잊고 사는 날>이

<삼위일체가 주시는 날>이면, 못 받고 끝납니다.

잊지 않으려면, 항상 부르고 찾고 매일 생각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개미는 ‘사람들에게 밟혀 죽은 하찮은 벌레’를 보고,

목숨 걸고 땀 흘리며 자기 집으로 끌고 갑니다.
가다가 자기도 사람 발에 밟힐까 봐 가슴 졸이며 갑니다.
개미 자신은 그 벌레를 못 잡지만, 사람이 밟아 놨기에 끌고 갑니다.
개미는 그것을 보고 “횡재했다.” 하며 끌고 갑니다.

개미가 스스로는 벌레를 못 잡지만 사람이 밟아 놓은 벌레는 끌고 갈 수 있듯이,

여러분 스스로는 얻지 못하는 것이지만

삼위일체와 주가 도와서 얻은 ‘영원한 횡재’이니

어서 잡아서 끌고 가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감동의 시대, 기분 좋게 해 주는 시대, 생각의 시대입니다.
감동받았을 때, 기분 좋을 때, 생각났을 때,

이때 ‘자기 몸’을 가지고 책임을 하며 행하십시오.

<때>는 마치 ‘자기가 행할 것의 자료’와 같습니다.

 때, 자료, 행실입니다.

<행할 때>는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만, 그 시간도 ‘잠깐’입니다.

늘 준비하고 있다가 ‘틈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그 시간에 행한 것들을 합치면, 엄청납니다.

<틈 시간에 한 일>이 <하루 종일 한 일>보다 많을 때도 있습니다.

이는 ‘제때’ 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일출 사진’을 찍는다 합시다.
순간 뜰 때 1~2분 만에 못 찍으면,

그날 하루 종일 시간이 있어도 ‘일출 사진’은 못 찍습니다.

이와 같이 <기회>는 ‘순간’일 때도 있습니다.

<틈 시간>은 ‘기회’입니다.
이때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좋게, 혹은 나쁘게 좌우됩니다.

<순간의 틈 시간>은 짧고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운명을 좌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위급할 때, <좁고 좁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도망쳐 살기도 합니다.
<모기>도 ‘틈’을 노리고 그 ‘좁은 틈’을 타고 어느새 물어뜯고 갑니다.

<전능자>도 ‘틈 시간’에 오셨다가

준비가 됐으면 만나고 가시고, 준비가 안 됐으면 순간 가십니다.

그 ‘틈’으로 인해 ‘운명’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마라톤 선수인데 ‘순간 틈 시간’에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하고 뛰어서 우승한 자도 있습니다.
 
해도 해도 시간에 쫓기면, ‘틈 시간’을 써 보십시오.

그러면 쫓기지 않습니다.

<틈>은 ‘작은 구멍’이지만, ‘전체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상대가 ‘틈’을 통해 ‘전체’를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틈>으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시간도 행위도 그러합니다.
<틈 시간>을 가지고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좌우됩니다.

전쟁 중의 작전 때도 항상 <틈 시간>이 ‘적이 노리는 시간’입니다.

그때 마음 놓고 있다가 당합니다.
항상 ‘마음 놓고 태만할 때’ 당하고, 실패합니다.

적을 미리 알면, 오히려 ‘적’을 함정으로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고 문제를 해결하게 되니

여러분도 이같이 하기를 기도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현재 할 일은 지금해라. 지금 주와 같이다.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전도서 3장 1-8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현재에 할 일>은 ‘현재’에 하는 것이고,

<미래에 할 일>은 ‘미래’에 가서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못 한 것>은 ‘미래’에 가서 할 수 없습니다.
<현재에 못 한 일>을 미래에 가서 하더라도

이미 <시간>이 지나고 <때>가 지났으니 해도 효과가 없고,

또 <미래>에 가서는 ‘미래의 일’을 해야 되니,

<현재 일>은 ‘현재, 지금’ 해야 합니다.
 
<현재의 것>은 ‘현재’에 해야 <미래>에 가서도 그로 인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는 ‘미래’를 낳습니다.
고로 <현재의 것>은 ‘현재’에 해야

<현재>도 잘되고, <미래>에 가서도 얻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도 그러합니다.
사람들이 준비됐든, 준비되지 않았든 꼭 ‘때’에 맞춰 행하십니다.
<계절>을 보세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바로 ‘계절의 옷’을 갈아입듯,

사람도 ‘그 때’에 따라서 행해야 순리로 살게 됩니다.

<제때>가 됐으면 누구를 기다리지 말고, 혼자 하더라도 ‘제때’ 해야 합니다.
혼자라도 ‘제때’에 맞춰 하다 보면 <때>가 돕습니다.
혼자 하더라도 ‘제때 하는 자’가 최고의 지혜자입니다.

<해가 떴을 때>와 <해가 졌을 때>는 ‘상황’이 바뀌듯,

<때>가 지나면 ‘상황’도 바뀝니다.
 
똑같은 바닷물이라도 <여름철>에는 들어가서 수영할 수 있지만,

 ‘더운 때’가 지나 <겨울철>이 되면 상황이 바뀌어서

바닷물이 얼음물같이 차가워져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고로 <때>가 되면, 그때 빨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황’이 뒤바뀌지 않아서 쉽게 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같은 거리>를 놓고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편히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 있고,

힘들지만 뛰어서 빨리 가는 방법이 있고,

돈이 들어도 차를 타고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천천히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고 늦게 얻습니다.
빨리 가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여 빨리 얻고 누리게 됩니다.

천천히 가서 늦게 도착하여 늦게 얻느냐,

빨리 가서 빨리 도착하여 빨리 얻고 누리느냐,

이것은 ‘얼마나 제때 빨리 행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편하게 가더라도 늦게 가면, 얻고 누릴 시간이 없고,

고생돼도 뛰고 달려서 빨리 가면, 얻고 누릴 시간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편한 방법’만 택해서 삽니다.
편하니까 좋지요?
그러나 <편한 것>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고,

<편한 것>이 ‘얻는 방법’은 아닙니다.
고생돼도 전심으로 하는 자가 가장 빨리 얻고, 가장 많이 얻고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현재 할 일>은 지금! 제 때!에 주와 같이 행하여,

많이 얻고 많이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사람이고 신이고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사람이고 신이고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