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대화 글동네] 식은 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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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어제저녁에 먹었던 돈가스를 꺼냈다.
신랑이 한 입 깨물더니 얼굴이 더 못생겨졌다.
“이거 언제 산 거야?”
“어제 저녁때 맛있게 먹은 건데.”
“왜 이리 딱딱해. 돌 씹은 줄.”
그러더니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생긴 건 날고기라도 씹게 생겼는데 은근히 소프트 체질이다.

다들 출근, 등교, 등원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몸이 뒤틀리고 좀이 쑤신다.
역마살이 끼었나?
2주 전에 글감을 4개나 잡았으면서 또 도망가려 한다.
카톡카톡~
세탁이 다 되었다는 휘파람 소리~
세이렌이 따로 없다. 나를 유혹하는 소리여….

정신줄을 간신히 잡고 글을 쓰려고 하니 아, 도무지 써지지 않는다.
자판기를 두드리긴 하는데 대체 누가 두드리는 것인가.
글에 혼이 없고 맛이 없다.
혼을 골목 어딘가 두고 온 것 같다.
이를 악물어 뇌를 짜 본다.
얼굴만 못 생겨질 뿐, 글 찌끄러기도 나오지 않는다.

아, 이럴 줄 알았어.
뇌가 흥분하고 불이 났을 때 써야 하는데,
한-참을 뇌 저~ 구석에다 박아놓고
이제야 글을 쓴다고 꺼내놓으니
다 식어 빠진 돈가스 마냥 글 쓸 맛이 나지 않는다. 

돈가스야 비닐을 씌우고 데우면 촉촉해진다지만,
나의 뇌는 무엇을 씌우고 데워야 촉촉해질까.

때 지나면 판이 식는다.
묵혀두고 있는 것, 더 돌 되기 전에 어서 꺼내어 맛나게 써보자.
더 돌 되면 씹다가 턱 나갈 테니.



[만남과 대화 글동네] 아깝다 버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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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 첫째와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으로 가고 있었다.
중간에 환승하다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타로 버블티 큰 사이즈 3000원’
이게 웬 횡재냐. 버블티를 저 가격에?

“주안아, 저거 먹자. 엄청 맛있어.”
“엄마, 난 다른 거 먹을래.”
“음료 안에 쫄깃한 열매도 들어 있어.”
“정말? 열매가 쫄깃해?”
아들을 설득한 나는 냉큼 버블티를 시켰다.

내 손에 거대한 자주색 버블티가 들렸다.
아들에게 한입 먼저 주었다.
반응이 없다.
‘열매를 못 먹어서 그런가?’
빨대에 열매를 서너 개 끼우고는 다시 먹였다.
“엄마 원래 이런 맛이야?”
무슨 일인가 싶어 내가 먹어보았다.

아...
설탕과 타로가 섞이지 못하고 따로 노는데,
거기에 녹지 않은 열매까지.
얼음 입자가 동동 떠다니는 건 무엇?
이 겨울에.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마디.
‘아깝다. 삼천 원.’
주위를 둘러보니 그 가격대 음식이 눈에 팍팍 들어왔다.
‘식혜를 2개 사 먹을걸…. 편의점에서 밀크티 사 먹을걸….
차라리 옥수수나 사 먹을걸…. 삼각김밥 3개 값이다.’
머리가 복잡했다.

적은 돈도 제값을 못 하면 그리 아깝다.
큰돈이라도 제값을 하면 그리 귀하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는 버블티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끝까지 마시기로 했다.
버블티가 훌쩍이며 고마워할 것 같았다.
그래도 역시 맛은 찝찝했다.

찝찝한 맛이냐,
제값 하는 맛이냐,
주인이 와서 사가기 전에
맛깔나게 만들어놓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최고의 극한 사명 메시야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칼럼_연재칼럼_세푼칼럼

최고의 극한 사명 '메시야'


십자가 위의 메시야

과다출혈? 심장마비?
십자가 위 예수님의 직접적 사인(死因)은 무엇이었을까요?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질식사'였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채찍으로 등 전체가 찢겨진 상태, 기력까지 소진 된 상황에서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으니 호흡 자체가 온 몸이 찢기는 고통이었을 것이라 합니다.

가까스로 호흡을 이어가던, 숨이 막혀오는 그 순간까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강도를 향해 구원을 베 풀었던 숙명, 아니 차라리 '천형(天刑)'에 더 가까워 보이는 구원자로서의 사명!!

사명자의 '극한 상황'은 비단 십자가 위 마지막 장면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의를 품은 기성 종교인들의 끝 없는 공격을 감내하면서 '머리 둘 곳 없다'셨던 말씀 그대로 사적인 시공간 조차 갖지 못 한 채 24시간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삶이 공생애 내내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메시야'는 사탄이 집중 공격을 하는 대상이기도 할 것이지만 그 모든 따르는자보다 수 천, 수 만배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이겨 나와야 하는,
가장 낮은곳에서부터 기어 올라와야만 하는 그런 사명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세상에서 가장 구원받기 어려운 자'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어기제가 없었던 인자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왜곡 해석함으로써,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의식, 행위를 일컫는 정신분석 용어입니다.


누군가 돈 자랑을 하면 괜히 배 아프고 자존감 상해 하면서 자신의 다른 자랑거리(학벌이나 명예등)를 은근히 부풀려 끄집어 내는 것도 '방어기제'의 한 예(例)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방어기제'가 없는 분이셨음을 신약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해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일부러 왜곡하는 일이 없던 분입니다.
자기가 위협 받는 상황임이 뻔 한데도 굳이 병자를 치료하시며 '네 죄를 사하였다' 하심이나 '신성 모독' 으로 자신을 향 해 던질 돌덩이를 쥐고 있는 자 들 앞에서 '아브라함 이 전, 태초부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하심 등이 그러함을 알게 합니다.


범인(凡人)에게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그런 존재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지극히 '순수한' 인격체거나, 혹은 정말 누군가(3자)의 '대리인' 즉 완벽하게 하나님이 쓰시는 육이 되었을 경우에나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 해 봅니다.


여하튼 최고의 극한 상황에 내 던져 져 있으면서 방어기제 조차 없었던 예수, 메시야.

근래에 수 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야'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진정 이런 메시야로서의 삶(십자가에 매 달려 있는 순간까지 오직 구원의 사명을 이루려는, 내내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성삼위의 육신으로 방어기제 조차 없어 보이는)을 살고 있는지 보게 된다면 그 수의 많음으로 인해 오판할 일은 아예 없을 것입니다.



맞을자들의 책임

그래서 주의길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메시야의 길은 그 어떤 사명의 길 보다 험난한 노정이 됩니다.
이 점에서 준비해놓은 터전, 곧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 하여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던 '이방인'의 역사로 틀어졌던 '신약'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역사였습니다.


메시야를 보내는 것이 '하늘의 책임분담'이라고 한다면 그의 오심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책임분담'이 될것입니다.
하늘 역사에 있어 주 맞을 준비를 않고 있으면 아예 주를 맞지도 못 할 것이며,
맞았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좋게도 나쁘게도 결정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 책임의 중함이 한 없이 크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우리는 승리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우리는 승리했다

본문요한계시록 6장 2절, 17장 14절

요한계시록 6장 2절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요한계시록 17장 14절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기 때문에 이긴다.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자들도 이긴다.』 했습니다.

<메시아>는 <자신을 메시아로 절대 믿고 따르는 자들>을 타고 달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하나님을 믿게 해 주고, <죄가 있는 자들>이 회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생명을 죽이는 전쟁>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영적 전쟁>을 합니다.

고로 하나님은 땅에 메시아를 보내시고 <생명을 죽이는 전쟁>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로 신앙의 전쟁,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이기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메시아는 능력이 있으니 다 할 수 있지.”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주’ 라고 해서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하나 행하면서 해야 했습니다.

결국 <주>는 승리하셨지만, 다 이기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온 것이 아니라
<영적 무기>인 ‘말씀’과 ‘기도’로 연마하고 무장하여
<사탄, 마귀>와 맞서 싸우면서 이겼습니다.

권투경기를 보면 어느 때는 KO로 이기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상대 선수에게 엄청나게 맞다가 막판에 뒤집어서 이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기는 선수는 없습니다. <승리하는 자>도 다 맞으면서 이깁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와 함께하면 결국은 승리하게 되니 힘들고 어려워도 주와 함께 끝까지 행하여 승리하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