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상징을 보고 주인을 생각해라





[ 본  문 ]  

* 누가복음 21장 27절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연결된 것은 하나다.’라는 주제로

   깊은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 오늘은 ‘<상징>에 매이지 말고 <주인>을 생각해라.’

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다.’라는 주일말씀과 하나로 연결된 말씀입니다.




◎ <핵>인 <주인>을 나타내기 위해 <상징>을 보여 줍니다.

   <상징>을 통해서 <주인>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저 기성인들도 <상징>에 매여 <주인>을 못 보고,

   섭리인들도 <상징>에 매여 <주인>을 못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상징>에 매이면, ‘신앙’도 ‘마음’도 죽어 있게 됩니다.



◎ 기성인들은 <상징>에 매여 <신앙>이 죽어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강사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잘 가르치기 바랍니다.




◎ <상징>에 매이지 말고 <주인>을 생각해라.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자기 뇌 속의 ‘걱정, 염려, 잡생각, 썩는 것들’은 

   <생각>으로 싹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 <영>도 그런 방법으로 썩는 것들을 없앱니다.




   <영>도 ‘영의 음식’을 먹습니다.




   <육>은 음식을 먹으면 배설물이 생기지요?

   그러나 <영>은 음식을 먹어도 배설물이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으로 ‘자기 뇌 속의 걱정과 썩는 것들’을 없애듯,

   <영>도 ‘음식’은 먹지만 

   <생각>으로 아예 없애 버리기 때문에 배설물이 없습니다.




◈ <영의 세계>는 ‘생각 실상 세계’입니다.

   생각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부터 오늘 말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자의 선실과>를 제일 크게 만들어 놓았는데,

   어디에 가면 이것을 볼 수 있는지 압니까?




   여러분들이 섭리사에 와서 배운 것들 중에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 바로 <월명동 지형>입니다.




   <월명동>은 몇 가지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여자의 선실과, 자궁 모양’입니다.




   <여자의 선실과, 자궁>에서 생명이 잉태되듯,

   <월명동>은 ‘시대 신부들이 탄생되는 상징적인 땅’입니다. <끝>




◈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건성으로 외식으로 생각하고 보고 들으면,

   스치는 바람 격이 되어 보나 마나, 들으나 마나입니다.




◈ 사람들은 ‘크면’ 형태를 모릅니다.

   <월명동 지형>도 크니, 어떤 모양인지 형태를 모릅니다.




◈ 성경에 ‘에덴동산’이 나옵니다.




   <에덴동산>을 확대해서 보면,

   ‘구약 – 신약 – 성약역사’를 뜻합니다.




   구약 – 신약 – 성약역사가 점진적으로 펼쳐지면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 <에덴동산>을 축소해서 보면,

   ‘생명나무’와 ‘선실과’를 뜻합니다. 




   여기서 ‘생명나무’와 ‘선실과’는 <상징>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실과’가 완전해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게 됩니다.




(* 생명나무와 선실과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화면을 보면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2>




◈ 상징적인 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 <생명나무>는 ‘아담’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보세요.

   아담의 몸이나 살이나 뼈에 ‘나무 같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비유>이며 <상징>입니다. 




   <상징>을 ‘비유’로 보고 깨닫는 지혜자가 돼야 합니다.




◈ <신약 때 생명나무, 아담>은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 <성약 때 생명나무, 아담>은 ‘이 시대에 보낸 자’입니다.




◈ <선실과>도 ‘상징’이며 ‘비유’입니다. 바로 ‘하와’입니다. 

   하와의 지체나 살이나 뼈가 과일 같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상징>이며 <비유>입니다. <끝> 




◈ 신약역사 때도, 성약역사 전반기 때도

   ‘시대의 하와’를 찾지 못했습니다.




   <복직된 하와, 선실과>를 찾아야 

   <복직된 아담, 생명나무>와 일체 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합니다.




   섭리역사는 37년 만에

   <복직된 아담> 앞에 <복직된 하와>를 찾아서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제2의 복직된 하와, 복직된 선실과’로서

   빛을 발하며 살아야 됩니다.




◈ 어떤 사람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는 ‘바위’, 혹은 ‘과일’ 등

   여러 가지 만물을 비유로 들어 말합니다.




   <바위>를 보여 주며 ‘어떤 사람’을 상징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살이나 뼈가 ‘돌’ 같지 않습니다. 




   <그 바위>를 보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라 함입니다. 




◈ <계시>도 ‘상징’으로 옵니다. 지혜로 깨달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경을 보면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온다.’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 <구름>은 ‘상징’입니다.




   <메시아>가 ‘보이는 구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육신’을 타고 오십니다.




   또한 <따르는 자들>이 ‘보이는 구름’입니다. 




   <메시아>가 말씀을 전하면서 

   ‘따르는 자들’을 타고 나타납니다. <끝>




◈ 메시아, 따르는 자들 모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름>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사람>과 <구름>이 비슷한 것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구름>은 ‘상징’입니다. 




◈ <실체>를 깨달으면 ‘비유’ 없이 실감 있게 깨닫게 됩니다.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온다고 했지만,

   <메시아 실체>를 깨달으니 ‘구름 비유’를 들지 않아도

   <메시아 실체>를 보며 살게 됩니다. 




◈ <상징>은 ‘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간접적인 ‘다리 역할’을 해 줍니다. 




   ‘<상징>을 통해 <핵, 주인>을 알아라.’ 함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월명동 <성자바위>도 ‘상징’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성자’를 생각하라 함입니다. 




   그런데 그 바위를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해외 섭리인들은 월명동에 자주 못 오니까, 

   <성자바위>를 자주 못 잡아서 ‘성자’와 함께하지 못하여 

   힘이 없지 않겠습니까?




   <성자바위>를 보면서 ‘생각의 눈’을 떠서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생각하고, 주를 생각하고,

   삼위일체와 주와 교통하며 살라 함입니다. 




   그런데 <상징>을 통해 ‘실체’를 보지 못하고,

   돌만 붙잡고 기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육적이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같습니다. <끝>  




◈ 글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써 놓으면,

   사람들은 그 글자만 만집니다. 




   <그 글>을 보고 ‘그 사람’을 생각하라 함입니다. 




◈ <상징>은 ‘다리 역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징>만 만지면서 대화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처음에는 상징인 ‘바위, 나무, 각종 만물’을 쓰고 대화하십니다.




   그러나 ‘그 만물’만 보고 끝내지 말고,

   <상징>을 통해서

   <핵>인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를 생각하고

   대화하고 교통하라 함입니다. 




◈ <성자>는 ‘성자 상징’으로 

   <성자바위>를 선물로 주고 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늘 나를 생각하고 나와 대화하고 이야기하기다.

     돌과만 대화하면 돌대가리 된다.

     <만물>은 하(下)차원이다.

     <만물>은 ‘상징’으로서 ‘주인에게 인도하는 인도자’다.”




◈ 어떤 사람은 월명동의 ‘선생 상징 나무’를 보고서,

   그것만 껴안고 기도합니다. 




   그 옆에 신령한 자, 주인이 서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선생 상징 나무>를 보여 주는 이유는

   <선생 상징 나무>를 보고

   <핵, 선생>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대화하라 함입니다.




   항상 <상징>를 보고

   <핵, 주인>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대화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상징>을 보고, <주인>을 생각하기입니다. 




◈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상징물>을 <실체>로 보고 섬깁니다. 




   그 상징물, 만물이 자기를 구원시키겠습니까?

   <상징>에 매여 ‘생각’도 ‘신앙’도 죽어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 <만물>, 곧 ‘상징체, 표상적인 것’을 보여 주며

   <핵>, 곧 ‘주인, 만물의 영장’을 깨우쳐 주려는 것입니다. 




   <주인>을 잊어버리고 사니,

   <상징>을 눈으로 보고 <주인>을 생각하라 함입니다. <끝> 




◈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저 앞서 가면서

   뒤에 따라오는 사랑하는 자가 잘 따라오도록

   “나 이쪽으로 가니 잘 따라와라.” 하고 <글>을 써 놨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는 ‘그 글’만 만지며 좋아했습니다. 




   <그 글>만 만지며 좋아하라 함이 아니고,

   <그 글>을 보고 “나 앞에 있으니, 어서 와.” 함입니다. 




(* 구체적으로 한 번 더 설명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 어떤 사람이 앞에 가면서

   뒤따라오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나무에다 “나 상징 나무다.” 하고 써 놓고 갔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던 사랑하는 자는 <그 나무>를 보고서

   <그 나무>만 안아 주고 가꾸고 퇴비하고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 사랑하는 자는 진수성찬을 차려 주려고 만들어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려도 안 와서 다시 가 보니,  

   <상징 나무>만 껴안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끈으로 <상징 나무>와 <그 사람>을 묶어 놓고 

   “그렇게 좋으면 <나무>를 껴안고 사랑하며 같이 살아라.”

했습니다. 




   그리고 <상징 나무>를 보고 <주인>을 찾아온 자와 함께

   기뻐하고 잔치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 후에 <상징 나무와 함께 묶여 있던 자>가 곤고하여

   끈을 끊고 와서 ‘뒷마당 잔치’에 참여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떠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여행 짐을 싸고 짊어지고 따라왔습니다. <끝>




◈ 성자도 성령님도 말씀하십니다.




   “상징에 묶이지 말아라.”




◈ <기성>은 ‘상징’에 꽁꽁 묶여 있습니다. 




   <구름>에 묶여 있고, 

   <공중>에 묶여 있고, 

   <불 심판>에 묶여 있고, 

   <예수님 육체>에 묶여 있습니다.




◈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하니 

   <구름>에 묶여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고,




   육신이 공중으로 휴거된다고 하니 

   <공중>에 묶여서 영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고,




   <불 심판>에 묶여 있으니 

   새 역사 진리의 말씀, 쪼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예수님이 200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올 것으로 생각하며 

   <예수님 육신>에 묶여 있으니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신 ‘전능하신 성자’를 못 보고, 

   새 역사로 오지 못하고, 새 주인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믿음의 줄로 묶인 것입니다.




   구시대에서 외치던 자들은 

   <상징>으로 묶어 놓고 무책임하게 사라졌습니다.




◈ 상징에 매인 자들은 ‘문자 신앙, 육적 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새 역사의 핵>인 ‘보낸 자’를 맞지 못했습니다.

   결국 기다리기만 하고 끝나게 됐습니다.

   모르고 산 자는 너무, 너무, 너무 억울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만물>만 ‘상징’이 아니라

   <사람>도 ‘상징 인물’입니다.




   <핵, 주인>을 위해서 ‘그 사람’을 상징으로 보냅니다.




   곧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 예수님> 앞에 ‘상징 인물’입니다.




   곧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핵, 주인, 메시아 예수님>을 깨달으라 함입니다. 




   그러나 <상징 인물, 세례 요한>에게 매인 자는

   <세례 요한>을 따르느라 <메시아 예수님>을 맞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 역사>는 ‘새 역사 앞에 상징적 역사’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 <구약역사>는 ‘신약의 상징’이고,

   <신약역사>는 ‘성약의 상징’입니다.




   <구약의 아담>은 ‘신약의 메시아 예수님 상징’이고,

   <신약의 아담 예수님>은 ‘성약 때 올 자 상징’입니다.




   <구약>에 매인 자들은

   기다리던 <신약의 메시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또한 <신약>에 매인 자들은

   기다리던 <이 시대 보낸 자>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끝> 




◈ 섭리사에서도 그러합니다.




   <주>는 ‘핵, 주인’입니다.

   <교역자, 지도자, 관리자들>은 ‘상징’입니다.




   그러나 마치 <상징 바위, 상징 나무>를 붙잡고 기도하듯,

   <교역자, 지도자, 관리자들>에게만 매여 있으면

   <주>를 못 보게 됩니다. 




◈ 이제는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마치 수료한 후 3년이 될 때까지는

   성자와 분체가 시대 말씀을 가르쳐 주며

   책임을 다해 도와주고 이끌어 주듯,

   <휴거 300선>까지는 성자와 분체가 책임을 다해 이끌어 줬습니다.




   구원받은 후부터는 자기가 배우고 알았으니

   구원자를 믿고, 시대 말씀을 행하고, 생명을 전도하고 관리하며,

   주의 일을 하고, 교육도 받고 질책도 받으며,

   삼위일체와 주를 더욱 사랑하며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이와 같이 <휴거 300선>부터는 

   자기가 <핵>을 깨닫고 <말씀>을 절대 믿고 행하면서

   점점 <휴거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 인물’을 통해 ‘핵’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상8> 중요




◈ 삼위일체 앞에 상징은

   ‘보이는 성자, 성자 분체, 땅의 구원자’입니다. 




◈ 분체 앞에 상징은

   ‘보이는 성령, 분체의 분체, 하와 표상’입니다.




◈ <땅의 분체, 구원자>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상징체’입니다.




   삼위일체 앞에는 ‘핵으로 인도하는 상징체, 상징 인물’이지만,

   땅에서는 ‘주체’이며 ‘핵’입니다. 




   <그>를 통해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삼위일체와 하나 되어 ‘신부’로서 사랑하며 살라 함입니다.




◈ <구원자가 보낸 자>가 ‘구원자의 분체’로서

   ‘핵, 곧 구원자에게로 인도하는 상징체, 상징 인물’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의 상징체’이며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입니다.




   그 사람은 ‘전체 앞에 표상’으로서

   분체, 구원자 앞에는 ‘상징체, 상징 인물’이지만,

   따르는 자들 앞에는 ‘핵’입니다. 




   곧 그 사람을 통해 ‘핵, 구원자’를 깨닫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받아 신부로서 단장하라 함입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평생 행하면,

     <휴거 700선>까지 오른다.




     그렇지 않으면 오르다가 만다.” 하셨습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상징>은 ‘핵, 주인에게로 인도하는 인도자’입니다.

   <상징>을 보면서 ‘핵, 주인을 생각하기’입니다. 




◈ <성자바위>를 한 번 더 예로 들겠습니다.




   <성자바위>는 ‘상징’으로서

   그 속에 있는 형상인 

   하나님, 성령님, 성자, 구원자, 치타를 알리는 중매자입니다.




   만일 <성자바위>를 ‘상징’으로 안 보고 ‘실체 핵’으로 본다면,

   <성자바위>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성자바위>는 ‘상징’입니다.

   상징이 뜻하는 ‘핵, 주인’은 <삼위일체와 주>입니다.




   고로 <성자바위>를 보면서

   핵이며 주인인 <삼위일체와 주>가

   항상 동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식을 바로 해야 됩니다.




◈ <상징>은 ‘핵인 주인’이 없을 때,

   상징으로 나타나 대화하기도 합니다. 




◈ <상징>에는 ‘두 가지 뜻과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상징이 뜻한 상징 인물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하늘이 상징으로 선물해 주셨으니

        ‘선물의 가치, 작품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징>은 ‘만물’이니, 꼭 관리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그 상징의 주인’도 관리해 줘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3.16> 이후로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니,

   그와 연결되어 있는 ‘짝’을 몰라서 실패합니다.




   <성자 승천>만 이야기하니,

   그와 연결된 <자기 휴거>를 몰라서 곤고했습니다.




   <시대 대표, 시대 아담>만 이야기하니,

   그와 연결된 <신부 대표, 하와 표상>을 몰라서

   차원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짝, 두 가지’를 다 까놓고 말해 줍니다.




   이는 마치 자녀가 엄마에게 “나 누가 낳았어?” 물으니,

   엄마가 자기 몸을 보여 주고 비디오를 보여 주며

   세밀하게 확실하게 가르치는 격입니다. 




   시대가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니, 이같이 가르칩니다. 




◈ <짝의 원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성자 승천 - 신부 휴거>가 짝이고,

   <시대 대표, 복직된 시대 아담 – 신부 대표, 복직된 하와>가 짝이고,

   <상징 – 주인>이 짝입니다.




   한 가지에 매이지 말고, 양쪽을 깨달아야 됩니다.




◈ <짝의 원리>를 깨닫고 알 때 신기하고, 더욱더 믿어집니다. 

   자기가 보화를 찾은 격입니다.




◈ 설교할 때 모두 들으라고 말해 줘도 모르니 편지로 말하든지, 혹은

   성령이 “너다. 깨달아라.” 하고 노골적으로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깨달으라고

   <꿈>으로도, <만물>로도, <말씀>으로도 ‘상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보고 말하고 계시해도 모르니,

   그때는 직접 몸부림치게 하여 깨우쳐 주십니다. 




◈ <상징>으로 보여 줬는데 모르니,

   결국 직접 사고를 당하거나 직접 몸부림쳐야만 그제야 압니다. 




   고로 꼭 <상징체>를 보고 <핵, 주인>을 깨달아야 됩니다.




◈ 깨달으면 몸에 안 부딪히고 해(害)를 피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몸에 부딪혀야 해를 피합니다. 




◈ 깨닫는 것은 ‘인간 책임 분담’입니다.




   가령 ‘샘’을 발견했다 합시다.




   그런데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이

   먹어도 되는 물인지 확실히 모르면, 




   - 그 샘물을 먹다가

     도중에 ‘못 먹는 물이겠지?’ 하고 의심하며 안 먹기도 하고,




   - 혹은 목이 탈 때만 샘물을 이용하며 먹습니다.




◈ 하나님이 <시대 표상으로 세운 자>도 확실히 모르면,

   - 믿고 동행하며 살다가도 등을 돌리고,

   - 혹은 가까이하다가도 믿음이 약할 때는 멀리하게 됩니다.




◈ <삼위일체 앞에 육으로 세운 상징자 분체>도

   자기가 아는 것에 따라서 믿어졌다가, 안 믿어졌다가 합니다. 




   확신에 선 자는 분체와 일체 되어 그를 중심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 오늘 말씀 

   “<상징>을 보고 <핵, 주인>을 생각하고 깨달아라.”입니다.




   <상징>에 매이면 <핵, 주인>을 못 보고

   <상징>으로 인해 ‘신앙’이 죽어 버립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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