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삼위일체는 비유의 거울을 사용하여 말씀하신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마태복음 13장 13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13장 34-35절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무엇을 계속하다 보면 

처음 받았던 감동, 느낌, 기쁨의 강렬함은 사라져 버립니다. 

고로 때에 따라 ‘전환’하여 새롭게 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활>은

동쪽에서 서쪽, 남쪽에서 북쪽으로 ‘변화’를 주어 행하면서

계절처럼 ‘차원’을 높이고 ‘방향’을 돌려서 해야

계속 더 느끼고 흥분되어 희망차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도

때에 따라 ‘전환’하며 새롭게 하여 역사를 강렬하게 느끼고

기뻐 행하며 누리도록 하였습니다.

인생을 살 때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여 ‘주와 일체’ 되어 

다양하게 행해야

권태가 없고 기쁨과 흥분,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니

연구하고 때마다 전환하면서 새롭게 하여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기도는 입력이다. 삼위일체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마태복음 13장 13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13장 34-35절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떤 방법으로 하시기에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삼위일체는 ‘절대 신’이지만 <하늘나라 말>로 하지 않고,

<사람들이 쓰는 말>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과 <사람들이 쓰는 존재물>을 

이용하여 말씀하고 보여 주십니다.
     

사람이 늘 쓰면서 보고 있으니,

이 방법으로 말하고 보여 주면

어려운 내용도 잘 이해하고 즉시 알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삼위와 같이 말을 잘하고 잘 이해시켜 주려면,

‘상대가 쓰는 말’과

‘상대에게 해당되는 것’을  

비유로 들어서 쉽게 말하면 됩니다. 


이제 삶 속에서 삼위일체가 

우리가 쓰는 말과 만물, 존재물로 비유하여 보여 주고 

말씀하시면

주께 감사하고 <비유>를 깨달아 속 시원히 행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성경에서도 현실에서도 보면,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성경에서도 현실에서도 보면,

백성 가운데 국가의 위기를 해결할 자가 있는데도

그를 못 찾고 자기 식대로 하다가 망했다.

혹은 하나님께서 말없이 그 사람을 쓰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기도하든지 말씀을 듣든지 신령한 단계에 들어가면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낮에 육신이 잠을 안 잘 때도

기도하든지 말씀을 듣든지 신령한 단계에 들어가면,

자기 육신의 생각이 신령해져서

혼체를 쓰고서 환상도 보게 되고

영계의 것들도 보게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된다.

고로 자기가 운전을 배우고 유능하게 운전하듯,

자기 삶은 자기가 잘 운전해야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시간을 보고 확인하지 않고 행하면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시간을 보고 확인하지 않고 행하면,

시간을 벗어나서 행하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표상을 보고 행하지 않으면

표상을 벗어나서 행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