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풀어주고 관리하라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풀어주고 관리하라

본문 잠언서 27장 23절, 베드로 후서 3장 10~14절

잠 27: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벧후 3:10-14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풀어준다’는 말은 다른 말로 ‘묶인 것을 ‘끌러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대로 통솔하시고, 묶인 것을 풀어주며 관리하십니다.

자신도 본인의 문제를 풀고, 관리해야만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아내의 마음, 남편의 마음, 자녀의 마음, 부모의 마음, 형제의 마음, 친구의 마음을 풀어주며 존재하게 해주는 삶입니다.

밭도 관리하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듯이,
인생도 관리하지 않으면 문제와 고통 속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고로 자신을 관리하며, 서로 묶인 것이 있다면 즉시 풀어주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관리가 생명입니다.
풀어주는 것이 생명입니다.
관리할 때는 사랑하는 애인을 관리하듯, 부모가 자녀를 관리하듯,
적극적으로, 책임 있게 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모두 묶인 모든 것을 풀고, 관리함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삶이 연속되길 기도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저서] 하늘말 내말 잠언집 9

[정명석 목사의 저서 ]

정명석 목사의 저서 : 하늘말 내말 잠언집 9




서문


하나님이 자신의 어떤 뜻을 펴시려면 뜻을 펴는 사명자에게 먼저 반드시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고 행하신다.
그래서 50여 년간 4만 잠언 이상을 썼다. 그 중 1000잠언씩 묶어 『하늘말 내말』 각 권에 담아냈다. 
여기 잠언들은 특히 2005년 이후에 쓴 잠언들이다.

한마디 지혜의 잠언은 삼위체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자 주님과 성령님이 시대 복음의 일을 할 때, 때마다 깨우쳐주신 생명의 말씀들이다.
어떤 잠언은 한 권의 책을 축소한 것이기도 하다. 또 어떤 잠언은 전능자 하나님의 음성을 그대로 쓴 것이다.
그래서 100권의 책을 읽고 얻는 것보다도 더 얻는 것이 크다. 
나도 잠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판단하고 섭리역사를 성자 주님과 함께 이끌어왔다.

잠언은 영감, 지혜, 영음의 말씀들이다. 
자정 넘어 새벽에 성자 주님이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성자 주님의 음성을 그대로 쓴 것이 많다. 
또, 내 영이 영계에서 보고 깨닫고 쓰기도 했고, 육계에서 깊이 기도를 하다가 영적 차원에서 깨닫고 보고 쓰기도 했고, 몸으로 직접 겪고 쓰기도 했다.

기도하고 영계에서 깨달았기에 토를 안 달고 쓴 것도 있으므로 읽는 자도 기도하고 깨닫기를 바란다. 너무 어려운 것은 토를 달아 해석하기도 했다. 
또 내용이 긴 잠언은 잘라 묶었다. 깊은 내용의 잠언은 한구절로 쓸 수 없어 다음 잠언으로 연결하면서 쓰되 끊어서 썼다. 
고로 어떤 잠언은 한 말씀을 20개, 혹은 30개, 혹은 50개로 끊어서 쓰기도 했으므로 끝까지 연결하여 읽어야 근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예언도 썼고, 현실에 진행되는 것도 썼다. 과거에 해 놓은 것도 썼고, 앞으로 할 것도 썼다. 
또 성경을 그릇 해석한 것도 확실히 바로잡아 잠언으로 축소해 썼다.
하늘의 비밀, 땅의 비밀들을 묵시의 지혜의 말씀으로 기록한 것이 수천 군데에 들어 있다.
역사에서 덮어야 할 거은 비유로 말했으니 자기 차원대로 진리의 보화를 캐내어 써라.
비유와 상징으로 썼으니 잠언의 비유를 깨달아야 풀게 된다.

각자에게 해당하는 답을 각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 처지에 따라 받게 되니, 잠언을 자기 식으로만 풀고 가르치면 안 된다. 
성자 주님과 성령님은 한 잠언으로 수백, 수천 사람들에게 각각 답을 주고 깨우쳐 주신다.
말씀 내용이 같은 것 같아도 다 개성으로 다른 잠언들이다. 
어떤 자는 한 잠언을 깨닫고 실천하여 하루에 많은 황금 보화를 얻었고, 어떤 자는 희귀종 걸작품을 깨닫고 하루에 수억을 벌기도 했다. 
어떤 자는 한 잠언을 받고 행하여 그날 일확천금을 얻었다.
모두 밤을 새우며 읽고, 깊이 읽어 인생의 답과 삶의 답을 찾고 하늘과 같이 해야 된다.
1000년 동안 모두 보면서 역사를 펼 말씀들이다.

성자 주님이 4만 잠언을 모두 발간하라고 말씀하여 순차적으로 이번에 7,8,9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책 엮느라 수고한 제자들, 정말 수고했다. 
사랑과 평강을 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마태복음 7장 7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나님은 기본으로 알아서 주시는 것도 있지만,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가진 자, 주는 자의 생각과 없어서 구하는 자, 받는 자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없을 때는 뭐 하나라도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것을 가진 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도 생각하고 하나님 뜻을 생각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더 좋은 것을 주셔야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간절한 기도, 진심을 다하는 기도, 사랑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늘 앞에 간구함으로 더 좋은 것을 얻고 누리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만남과 대화 글동네] 작은 성취감

[만남과 대화 글동네]




블로그에 100일 동안 감사 일기 쓰기 도전을 했다.
감사 일기 쓰는 시간은 길어도 15분을 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백일 동안 빠지지 않고 한다는 것이 약간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또 공개적으로 하다 보니 블로그 이웃들의 시선도 의식되어 쓰기 싫은 날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작년부터 시작한 백일 미션은 올해 초에 성공했다.
작은 성공이지만 성공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다.
꼭 큰 목표를 세워 성공해야지만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 아이들 말로 자신감 뿜뿜이다.

늘 새해가 오면 목표를 잡는데, 욕심이 많아 목표를 너무 높게 잡거나 기간을 길게 잡았다.
그러다 보니 작게는 작심삼일로 끝날 때도 있고, 한두 달 하다 지겨워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다이어트도 1주일을 못 가고, 가계부 쓰기도 2주일을 못 가고, 밥 먹자마자 설거지하기도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운동도 매일 해야지 했지만, 일주일에 많이 해봐야 3일밖에 하지 못했다.
만약 감사 일기 쓰기도 백일 미션을 하지 않고 1년 미션으로 계획했다면 아마도 실패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3일씩, 7일씩, 한 달씩 등 작은 단위로 시작해서 장기간까지 해볼 작정이다.
이 자신감 뿜뿜이 사라지기 전에 뭐든 도전해야겠다.



[만남과 대화 글동네] 제자리 붓걸음

[만남과 대화 글동네]




붓글씨(캘리)를 쓴 지도 일 년이 되었다.
나는 작품 반이라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어머, 흘림 처음 썼다면서 왜 이리 잘 써요?”
강사님의 칭찬 소리에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중급반 사람들이 큰 붓으로 ‘해오름’을 썼다.
굵은 획과 가는 획이 조화를 이루어 멋진 작품이 되었다.

‘강사님이 쓴 줄 알았더니…. 제법이네.’
나도 분명 흘림체를 썼는데 저렇게 쓴 기억이 없다.
아무리 획을 그어도 굵게 나온다. 아니면 중간에 끊기거나.
흘림은 요염한 맛이 있는데 내 것은 아무리 봐도 돌쇠 느낌이다.

‘성격 탓인가?’
글씨도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다. 

“어머, 도자기에 글씨 쓴 것 좀 봐요. 이건 팔아도 되겠다. 장사해도 되겠어요.”
고급반 쪽에서 칭찬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로 봤다.

초벌구이한 접시 위에 멋들어진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 삐뚤어진 획 하나 없었다.
'아니 다들 붓 좀 잡았다 오셨나? 왜 이래?'

화선지에 그려진 내 글씨체를 보았다.
1년 배운 솜씨라고 하기엔 산만 그 자체였다.
강사님이 글씨를 먼저 알아보게 써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겉멋만 들었는지 글자가 문장 사이에서 우왕좌왕이다.
“오늘은 건질 글씨체가 없네요. 지난주에 무슨 일 있었어요?”
어느샌가 강사님이 오셔서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남들은 센스도 좋아서 확확 실력이 느는데 나는 아직도 감을 못 잡고 헤매는 것 같다.
강사님이 문제점을 짚어주어도 쓸데없는 부분만 열심이다.
나도 내가 답답하다.

때론 내가 영~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싶어서 고민도 된다.
괜히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가방에서 화선지를 꺼내다 작년에 쓴 글씨를 보게 되었다.
한글 처음 배우는 학생처럼 글씨가 삐뚤빼뚤.
오늘 쓴 글씨와 비교해보니 그래도 오늘이 나았다.
‘멈춰 있는 것 같았는데 꾸물꾸물 올라가고 있었구나.’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변화가 없을 리가 없다.

조급한 마음을 다시 접고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다시 붓을 들어 본다.

지금은 분명 글씨가 제자리걸음 같아 보여도
내년에 다시 글씨를 꺼내 보면 ‘어? 좋아졌잖아?’ 하며 놀랄지 누가 알겠는가.
오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