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좋아했던 징그스칸,자신의 매를 죽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토의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은 사냥을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사냥 때마다 잘 길들여 친구와도 같은 매 한 마리를 자신의 어깨에 앉혀 놓고 동행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에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중 졸졸 흐르는 가는 물줄기를 어렵사리 발견하고 물 잔에 겨우 담아 마시려 했더니 이 매가 갑자기 물잔을 날개로 쳐 엎어 버렸답니다. 그 뒤로 수 차례 계속 물잔에 물을 채워 마시려고 하면 엎질러 나중에 물잔까지도 어디론가 떨어뜨려 찾기 힘들게 만들자 징키스칸은 더 참지 못 하고 칼로 매를 베어 죽입니다. 그러고 난 뒤 물 담아 마실 잔도 없으니 물줄기를 따라 더 올라가 손으로나마 떠서 물을 마실 곳을 찾으려 했습니다.
매와 징기스칸의 시각 차이로 인해
‘소쩍새 우는 암울한 산 골짜기, 더벅머리 총각으로 살다 끝날 인생인가’ 한탄하셨던, 별 희망 없이 인생 성공은 ‘하늘의 해 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셨던 선생님께서 ‘그래도 성삼위를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다.’시며 오직 성삼위 사랑을 희망 삼고 열심히 사셨던 것은 상천하지 내려다 보시며 다 꿰뚫어 알고 역사하시는 성삼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바탕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시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성삼위
사랑하는 성삼위는 위대한 우리 섭리 역사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우리가 가진 현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깨쳐 주시며 희망과 사랑으로 늘 이끌어 주십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보는 것과 시각이 다르시고, 또 다른 것을 보시고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길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희망을 갖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당장의 목마름으로 독이 든 물을 들이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성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한참을 올라가 보니 조금 고여있는 물 웅덩이 속에 맹독을 품고 있는 독사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물을 먹었더라면 자칫 죽을 뻔 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친구였던 매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고, 매를 가지고 돌아와 금으로 동상을 만들고 한쪽 날개에는 "화나서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 또 다른 날개에다가는 "잘못한 일을 하더라도 친구는 친구다"라는 글귀를 새겨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번 말씀을 들으면서 새삼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바로 관점, 시각의 차이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게 된 궁극적 원인은 매의 시각과 징기스칸의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 되었다 볼 수 있겠습니다.
매는 높이 떠서 아래 상황을 훤히 내다 보면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 판단한 것이었는데 이를 보지 못한 징기스칸은 ‘생명의 은인’을 ‘무례한 짐승’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금주 말씀도 이와 같이 우리가 가진 시각의 한계, 사고의 한계를 밝히시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안목과 인식을 갖추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황, 현재 내가 처한 한계와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행하면 실망하고 낙심하여 실패 할 수 있으니 하늘의 입장과 같이 더 크게 보고 넓게 또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시각이 달라지면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다르면 판단이나 행동도 달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쩍새 우는 암울한 산 골짜기, 더벅머리 총각으로 살다 끝날 인생인가’ 한탄하셨던, 별 희망 없이 인생 성공은 ‘하늘의 해 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셨던 선생님께서 ‘그래도 성삼위를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다.’시며 오직 성삼위 사랑을 희망 삼고 열심히 사셨던 것은 상천하지 내려다 보시며 다 꿰뚫어 알고 역사하시는 성삼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바탕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시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성삼위
사랑하는 성삼위는 위대한 우리 섭리 역사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우리가 가진 현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깨쳐 주시며 희망과 사랑으로 늘 이끌어 주십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보는 것과 시각이 다르시고, 또 다른 것을 보시고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길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나 될 수 있을까 하셨지만 성삼위는 성지 땅 수도 생활을 통해 전혀 다른 길, 하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되는 길로 결국 인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제대로 깨달아 알 때 당장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말씀을 끝까지 믿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희망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희망을 갖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당장의 목마름으로 독이 든 물을 들이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성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징기스칸과 매의 시각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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