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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생각에 따라 '실체'가 만들어진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성경에서 예언한 마지막 전장(戰場) 아마겟돈은 인간의 ‘뇌’ 일지 모릅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스마트 폰과 같은 첨단 디지털 기기들은 정보를 섬세하게, 균형 잡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뒤죽박죽 어지러이 늘어만 놓아 ‘생각’의 집중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쓰면 쓸수록 ‘생각’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뇌’에서부터 뺏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지토 에르고 숨(Cōgitō ergo sum)" 우리가 ‘생각’ 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는 명언의 라틴어입니다. 학문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기반을 찾기 위해 데카르트는 모든 인식을 뒤 엎고 처음부터 다시 ‘의심’ 해 보기로 합니다. 의심 할 이유가 있는 모든 사물의 존재를 의심하던 중 최종적으로 의심을 중지해야 할 정착지. ‘생각하고 있는 나’,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존재’ 를 찾게 되었을 때 한 말입니다.


생각에 따라 몸이 움직이고 '실체'가 만들어진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천재들은 어떻게 생각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왔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 입니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본다’지만 창조적 천재들은 그림을 ‘듣고’ 음악을 ‘본다’고 합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보다 머릿속 생각으로 노래를 ‘그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한 가지 형상을 보면서 ‘생각’으로 무한히 다양한 새로운 대상들을 그려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생각으로 형상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고,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결국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몸’이 움직이고 행해서 ‘실체’(존재)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생각’ 과 ‘실제 행한 것’ 두 가지를 보시고 인간들을  심판하기도 하시고, 축복을 주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생각’은 ‘뇌’에서 발생되기 때문에 사람이 생각하지 않으면 뇌가 굳어 버립니다. 뇌가 굳지 않으려면,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은 눈과 같아 성삼위를 생각하면 보게 된다.

생각을 집중하면 ‘말’이 ‘도표와 화면’이 되어 보이고, 느껴지고,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생한 꺠달음을 얻게 될 때 즉시 행동할 수 있는 실천력이 강하게 되고, 자기 생각의 실체인 ‘혼체’를 더욱 빛나는 하늘 형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생각은 ‘눈’과 같다 하셨습니다. 성삼위를 ‘생각’할 때 그 존재감이 느껴지고 눈으로 본 듯 확신 하게 된다 하셨습니다. 

결국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음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금주 주신 귀한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생각의 은혜’를 받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 창조주를 ‘의식하고’ 감사와 사랑을 다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결국 이러한 삶이 우리를 더 나은 ‘변화’에 이를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생각에 따라 '실체'가 만들어진다.



http://www.god21.net/Godworld/HeavenAndMe/1LineMentor/View/53847?page=2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생산성 있는 인생을 살아라.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똑같은 시간을 들여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빨리 끝내면서 결과도 좋은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 제대로 매듭이 안되거나 그 결과가 썩 좋지 않은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일의 ‘생산성(Productivity)’과 관련된 것인데 관련하여 ‘3R’ 컨셉이라고 많이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3R이란 Right Time, Right Thing, Right Way 라고 하는 데 제 때 제 할 일을 제대로 된 방법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산성이란 개념은 결국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얻어 내는가(R.O.I Return On Investment)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지표인데, 바로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 생산성을 높여 수고한 만큼 제대로 얻어 내는 최첨단의 방법이 3R 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생산성 제고’가 만능은 아닙니다. 생산성 극대화에만 가치를 두면 그 만큼 잃는 것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성 만능주의나 생산성 지상주의의 논리에 빠져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생산성’ 개념은 항상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 핵심 사항인 것은 부정 할 수 없습니다.


생산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 : 선택과 집중, 그리고 기도


다시 이 생산성의 귀중한 단서로서 ‘3R’을 핵심적인 두 단어로 압축을 해 보자면 결국 ‘선택과 집중’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매우 제한 되어 있는 우리의 시간이나 물질 등 우리의 자원들을 가지고서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의 시간이나 돈이 충분해서 다 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거나,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또한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먼저는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고 제대로 선택 했을 때는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이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손자병법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핵심 비법으로 소개가 된 바와 같이 동서고금에 있어 진리이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활용함에 있어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자칫 엉뚱한 일이나 나아가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선택 하고 우리의 귀한 자원을 낭비하게 될 경우 ‘인생실패’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하늘은 말씀을 통해 ‘기도’를 하고 반드시 하늘과 상의를 하면서 일을 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산성이 최고 높은 것은? 
우리의 자원을 하늘 앞에 투자하는 것 
100년 주어진 인생의 기간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하면서 살게 됩니다. 세상의 육적인 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더 잘 먹고, 잘 입는 것에만 목매어 살 수도 있겠고, 보다 하늘, 영적 입장에서 차원 높은 일에 일생을 쓰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늘 앞에 감사 할 것은 시대의 새로운 말씀을 통해 세상 일로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저희들을 섭리사로 불러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주는 일은 가볍고 쉬우니 이곳에서 하늘 일을 함께 하자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늘 일은 할수록 재미있고 신나며 더욱 성삼위와 보낸자를 사랑하게 되는 귀한 일이니 일이면서 축복입니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자원을 투자하고 영원한 성약 황금성을 대가로 받는 일이기에 생산성의 측면에서도 그 어떤 일과 비교 할 수 없는 인생 최고의 생산성 높은 일인 것입니다. 이제 따뜻한 봄 날 어떤 일로 우리들의 인생을 쓸지 기도를 통해 잘 선택하고 즉시 집중하여 실천하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생산성 있는 인생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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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징기스칸과 매의 시각차이



사냥을 좋아했던 징그스칸,자신의 매를 죽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토의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은 사냥을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사냥 때마다 잘 길들여 친구와도 같은 매 한 마리를 자신의 어깨에 앉혀 놓고 동행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에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중 졸졸 흐르는 가는 물줄기를 어렵사리 발견하고 물 잔에 겨우 담아 마시려 했더니 이 매가 갑자기 물잔을 날개로 쳐 엎어 버렸답니다. 그 뒤로 수 차례 계속 물잔에 물을 채워 마시려고 하면 엎질러 나중에 물잔까지도 어디론가 떨어뜨려 찾기 힘들게 만들자 징키스칸은 더 참지 못 하고 칼로 매를 베어 죽입니다. 그러고 난 뒤 물 담아 마실 잔도 없으니 물줄기를 따라 더 올라가 손으로나마 떠서 물을 마실 곳을 찾으려 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 보니 조금 고여있는 물 웅덩이 속에 맹독을 품고 있는 독사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물을 먹었더라면 자칫 죽을 뻔 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친구였던 매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고, 매를 가지고 돌아와 금으로 동상을 만들고 한쪽 날개에는 "화나서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 또 다른 날개에다가는 "잘못한 일을 하더라도 친구는 친구다"라는 글귀를 새겨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번 말씀을 들으면서 새삼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바로 관점, 시각의 차이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게 된 궁극적 원인은 매의 시각과 징기스칸의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 되었다 볼 수 있겠습니다.

매와 징기스칸의 시각 차이로 인해

매는 높이 떠서 아래 상황을 훤히 내다 보면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 판단한 것이었는데 이를 보지 못한 징기스칸은 ‘생명의 은인’을 ‘무례한 짐승’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금주 말씀도 이와 같이 우리가 가진 시각의 한계, 사고의 한계를 밝히시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안목과 인식을 갖추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황, 현재 내가 처한 한계와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행하면 실망하고 낙심하여 실패 할 수 있으니 하늘의 입장과 같이 더 크게 보고 넓게 또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시각이 달라지면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다르면 판단이나 행동도 달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쩍새 우는 암울한 산 골짜기, 더벅머리 총각으로 살다 끝날 인생인가’ 한탄하셨던, 별 희망 없이 인생 성공은 ‘하늘의 해 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셨던 선생님께서 ‘그래도 성삼위를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다.’시며 오직 성삼위 사랑을 희망 삼고 열심히 사셨던 것은 상천하지 내려다 보시며 다 꿰뚫어 알고 역사하시는 성삼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바탕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시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성삼위


사랑하는 성삼위는 위대한 우리 섭리 역사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우리가 가진 현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깨쳐 주시며 희망과 사랑으로 늘 이끌어 주십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보는 것과 시각이 다르시고, 또 다른 것을 보시고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길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나 될 수 있을까 하셨지만 성삼위는 성지 땅 수도 생활을 통해 전혀 다른 길, 하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되는 길로 결국 인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제대로 깨달아 알 때 당장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말씀을 끝까지 믿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희망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희망을 갖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당장의 목마름으로 독이 든 물을 들이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성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징기스칸과 매의 시각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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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최고의 극한 사명 메시야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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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극한 사명 '메시야'


십자가 위의 메시야

과다출혈? 심장마비?
십자가 위 예수님의 직접적 사인(死因)은 무엇이었을까요?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질식사'였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채찍으로 등 전체가 찢겨진 상태, 기력까지 소진 된 상황에서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으니 호흡 자체가 온 몸이 찢기는 고통이었을 것이라 합니다.

가까스로 호흡을 이어가던, 숨이 막혀오는 그 순간까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강도를 향해 구원을 베 풀었던 숙명, 아니 차라리 '천형(天刑)'에 더 가까워 보이는 구원자로서의 사명!!

사명자의 '극한 상황'은 비단 십자가 위 마지막 장면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의를 품은 기성 종교인들의 끝 없는 공격을 감내하면서 '머리 둘 곳 없다'셨던 말씀 그대로 사적인 시공간 조차 갖지 못 한 채 24시간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삶이 공생애 내내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메시야'는 사탄이 집중 공격을 하는 대상이기도 할 것이지만 그 모든 따르는자보다 수 천, 수 만배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이겨 나와야 하는,
가장 낮은곳에서부터 기어 올라와야만 하는 그런 사명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세상에서 가장 구원받기 어려운 자'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어기제가 없었던 인자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왜곡 해석함으로써,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의식, 행위를 일컫는 정신분석 용어입니다.


누군가 돈 자랑을 하면 괜히 배 아프고 자존감 상해 하면서 자신의 다른 자랑거리(학벌이나 명예등)를 은근히 부풀려 끄집어 내는 것도 '방어기제'의 한 예(例)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방어기제'가 없는 분이셨음을 신약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해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일부러 왜곡하는 일이 없던 분입니다.
자기가 위협 받는 상황임이 뻔 한데도 굳이 병자를 치료하시며 '네 죄를 사하였다' 하심이나 '신성 모독' 으로 자신을 향 해 던질 돌덩이를 쥐고 있는 자 들 앞에서 '아브라함 이 전, 태초부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하심 등이 그러함을 알게 합니다.


범인(凡人)에게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그런 존재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지극히 '순수한' 인격체거나, 혹은 정말 누군가(3자)의 '대리인' 즉 완벽하게 하나님이 쓰시는 육이 되었을 경우에나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 해 봅니다.


여하튼 최고의 극한 상황에 내 던져 져 있으면서 방어기제 조차 없었던 예수, 메시야.

근래에 수 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야'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진정 이런 메시야로서의 삶(십자가에 매 달려 있는 순간까지 오직 구원의 사명을 이루려는, 내내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성삼위의 육신으로 방어기제 조차 없어 보이는)을 살고 있는지 보게 된다면 그 수의 많음으로 인해 오판할 일은 아예 없을 것입니다.



맞을자들의 책임

그래서 주의길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메시야의 길은 그 어떤 사명의 길 보다 험난한 노정이 됩니다.
이 점에서 준비해놓은 터전, 곧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 하여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던 '이방인'의 역사로 틀어졌던 '신약'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역사였습니다.


메시야를 보내는 것이 '하늘의 책임분담'이라고 한다면 그의 오심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책임분담'이 될것입니다.
하늘 역사에 있어 주 맞을 준비를 않고 있으면 아예 주를 맞지도 못 할 것이며,
맞았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좋게도 나쁘게도 결정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 책임의 중함이 한 없이 크게 느껴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