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진실로



<육적>으로도 진실로,

<영적>으로도 진실로,

<마음>으로도 진실로 해 나가야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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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글동네 : Sense



사람은 다양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그러하지만, 동물도 감각기관으로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고 다양한 자극을 느낀다.
거칠고 힘든 야생에 사는 동물들은 감각기관에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살아간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유아용 만화영화 <뽀롱뽀롱 뽀로로>에 나오는 여우의 캐릭터인 사막여우는 
작은 체구에 큰 귀를 가지고 있다.
체구가 작으면 열을 식힐 몸의 표면적이 줄어들어 몸 안에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데,
피부가 연하고 혈관이 노출된 큰 귀가 주로 열을 발산하는 역할을 하여 더운 사막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코끼리의 귀도 그렇고, 당나귀나 말의 귀도 그런 역할을 한다. 귀가 크면 체온도 빨리 식히고, 소리도 잘 들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추운 북극에 사는 북극여우의 귀는 짧고 둥근데, 북극여우의 귀가 사막여우의 귀처럼 그렇게 크다면, 
넓은 귀에 고드름이 달려 살 수가 없을 것이다.

평생 거꾸로 매달려 사는 박쥐는 시각이 약하고 어둠 속에서 활동하다 보니 초음파가 발달했다.
초음파는 입과 코로 쏘고 귀로 받아들이는데, 사물은 그냥 형체 정도만 알아본다.
그 정도의 초음파만으로도 박쥐는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고, 자기보다 큰 물체를 피하는데 충분하다.

초음파를 사용하는 동물들은 의외로 많은데, 고양이와 쥐도 사용한다.
고양이는 진동수가 6만 번이나 되는 초음파를 들을 수 있고, 그보다 더 높은 설치류의 초음파를 듣고 쥐를 잡을 수 있다.
깊고 어두운 바다에 사는 고래의 초음파는 어찌나 강한지, 물고기 부레 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기절시킨 뒤, 잡아먹을 정도이다.
음파는 공기보다 물속에서 더 빨리 퍼져, 대왕고래의 초음파는 수천km까지 뻗어 나간다.
어둡고, 깊어도, 다 먹고 살 수 있는 감각들이 있어 굶어 죽지 않으니,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의 창조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느리고 굼뜬 사람의 대명사인 나무늘보는 마음씨 좋은 옆집 대머리 아저씨 같다.
나무늘보는 너무 게을러서 몸에 이끼가 다 핀다고 하는데, 나무늘보에게도 변명은 있다.
게을러서라기보다 털과 몸에 나쁘지 않은 세균이나 곰팡이를 일부러 키우는데,
이것들이 원래 회색인 털을 녹색으로 염색해서 천적에게 잘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준다.
천적은 아마존 나무 꼭대기에 사는 큰 하피독수리와 재규어인데, 일단 그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인지 나무늘보는 숨조차도 아주 느리게 쉰다.
나무늘보가 계속 움직일 경우 1분에 1~2m 정도 이동하고, 나무 위에서는 4m 정도 움직이는데,
1분당 1cm 정도 가는 달팽이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이다.
무늘보가 달팽이를 만난다면 나처럼 빨리 움직이라고 큰소리쳐도 될 것이다.

작아도, 커도, 느려도, 빨라도 다들 각자의 감각을 가지고 개성대로 살아간다.
자연 만물도 그러한데 우리도 각자의 감각을 잘 발달시켜 자신만의 개성체로 만든다면, 한층 멋진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글동네 :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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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징기스칸과 매의 시각차이



사냥을 좋아했던 징그스칸,자신의 매를 죽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토의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은 사냥을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사냥 때마다 잘 길들여 친구와도 같은 매 한 마리를 자신의 어깨에 앉혀 놓고 동행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에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중 졸졸 흐르는 가는 물줄기를 어렵사리 발견하고 물 잔에 겨우 담아 마시려 했더니 이 매가 갑자기 물잔을 날개로 쳐 엎어 버렸답니다. 그 뒤로 수 차례 계속 물잔에 물을 채워 마시려고 하면 엎질러 나중에 물잔까지도 어디론가 떨어뜨려 찾기 힘들게 만들자 징키스칸은 더 참지 못 하고 칼로 매를 베어 죽입니다. 그러고 난 뒤 물 담아 마실 잔도 없으니 물줄기를 따라 더 올라가 손으로나마 떠서 물을 마실 곳을 찾으려 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 보니 조금 고여있는 물 웅덩이 속에 맹독을 품고 있는 독사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물을 먹었더라면 자칫 죽을 뻔 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친구였던 매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고, 매를 가지고 돌아와 금으로 동상을 만들고 한쪽 날개에는 "화나서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 또 다른 날개에다가는 "잘못한 일을 하더라도 친구는 친구다"라는 글귀를 새겨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번 말씀을 들으면서 새삼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바로 관점, 시각의 차이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게 된 궁극적 원인은 매의 시각과 징기스칸의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 되었다 볼 수 있겠습니다.

매와 징기스칸의 시각 차이로 인해

매는 높이 떠서 아래 상황을 훤히 내다 보면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 판단한 것이었는데 이를 보지 못한 징기스칸은 ‘생명의 은인’을 ‘무례한 짐승’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금주 말씀도 이와 같이 우리가 가진 시각의 한계, 사고의 한계를 밝히시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안목과 인식을 갖추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황, 현재 내가 처한 한계와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행하면 실망하고 낙심하여 실패 할 수 있으니 하늘의 입장과 같이 더 크게 보고 넓게 또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시각이 달라지면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다르면 판단이나 행동도 달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쩍새 우는 암울한 산 골짜기, 더벅머리 총각으로 살다 끝날 인생인가’ 한탄하셨던, 별 희망 없이 인생 성공은 ‘하늘의 해 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셨던 선생님께서 ‘그래도 성삼위를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다.’시며 오직 성삼위 사랑을 희망 삼고 열심히 사셨던 것은 상천하지 내려다 보시며 다 꿰뚫어 알고 역사하시는 성삼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바탕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시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성삼위


사랑하는 성삼위는 위대한 우리 섭리 역사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우리가 가진 현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깨쳐 주시며 희망과 사랑으로 늘 이끌어 주십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보는 것과 시각이 다르시고, 또 다른 것을 보시고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길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나 될 수 있을까 하셨지만 성삼위는 성지 땅 수도 생활을 통해 전혀 다른 길, 하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되는 길로 결국 인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제대로 깨달아 알 때 당장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말씀을 끝까지 믿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희망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희망을 갖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당장의 목마름으로 독이 든 물을 들이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성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 징기스칸과 매의 시각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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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기도를 깊이하라



기도를 깊이 하라.

깊이 기도하면 기도에 시동이 걸린다.

성령이 인도해 주신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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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게 나쁘게 좌우된다



말씀_설교말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게 나쁘게 좌우된다

본문  마태복음 3장 3절, 누가복음 10장 38~40절

마태복음 3장 3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0장 38~40절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사람이 무엇을 하든 구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게 되기도 하고, 나쁘게 되기도 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똑같은 자제로도 멋있는 건축물이 지어지기도 하고
형편없는 건축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운동도 구상을 멋있게 하고, 감독과 코치를 잘하면 경기에서 이기듯
모든 일에 구상과 계획을 잘하고 행하기입니다.

생활도 신앙도 그러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하면,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없으니 늘 연구하고 구상을 잘해 뜻있고 멋있게 살기 바랍니다.
이제, 무엇을 하든 멋있게 구상하고 행하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글동네 : 포커페이스





지난주, 엄마가 카레를 플라스틱 통에 한가득 보내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고구마, 감자, 파프리카, 브로콜리, 양파 등이 한가득이다.
냉장고 야채칸을 다 털었나 보다.
국자를 들고 휘휘 젓는데 뭔가 삐죽 올라온다.
뭔가 해서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게 빠지면 엄마의 요리가 아니지.’
엄마의 머리카락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이러한 상황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반찬을 먹다가 머리카락을 발견하면 “엄마!” 하고 소리 지르면서
맨날 음식에 들어간다고 엄마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엄마는 그게 왜 들어갔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얼른 음식에서 머리카락을 치웠다.
나는 맨날 모른다면서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런데 나는 봤었다.
엄마가 무말랭이 반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를 깎고 다듬고 다시 명주실에 꿰어서 하나하나 엮은 다음,
일주일을 곱게 말려 다시 양념장에 버무리는 모든 과정을.
게다가 양념장 또한 적은 수고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그걸 봤으면서도 나는 “엄마!” 이랬다.
철이 덜 든 게지. 

그 시간이 돌고 돌아 나이 마흔에
엄마의 머리카락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눈치챘냐?
카레 또한 그러했을 터.
냄비에 눌어붙을까, 채소는 잘 익었을까.
얼마나 뚜껑을 열고 휘저었을까?
그래서 엄마 음식은 뭐든 다 맛있나 보다. 

엄마 카레에 밥을 얹는데 거기서 머리카락이 나왔다.
신랑이 이게 뭐냐며 핀잔을 준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감사하며 먹어라. 괜히 들어갔겠냐.”


 [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글동네 : 포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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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믿고 따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채워 주시니, 하나님을 믿고 따르라.

<성령>이 해 주시니, 성령을 믿고 따르라.

<성자 주>가 해 주시니, 주를 믿고 따르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