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마태복음 7장 7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나님은 기본으로 알아서 주시는 것도 있지만,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가진 자, 주는 자의 생각과 없어서 구하는 자, 받는 자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없을 때는 뭐 하나라도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것을 가진 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도 생각하고 하나님 뜻을 생각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더 좋은 것을 주셔야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간절한 기도, 진심을 다하는 기도, 사랑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늘 앞에 간구함으로 더 좋은 것을 얻고 누리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만남과 대화 글동네] 작은 성취감

[만남과 대화 글동네]




블로그에 100일 동안 감사 일기 쓰기 도전을 했다.
감사 일기 쓰는 시간은 길어도 15분을 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백일 동안 빠지지 않고 한다는 것이 약간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또 공개적으로 하다 보니 블로그 이웃들의 시선도 의식되어 쓰기 싫은 날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작년부터 시작한 백일 미션은 올해 초에 성공했다.
작은 성공이지만 성공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다.
꼭 큰 목표를 세워 성공해야지만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 아이들 말로 자신감 뿜뿜이다.

늘 새해가 오면 목표를 잡는데, 욕심이 많아 목표를 너무 높게 잡거나 기간을 길게 잡았다.
그러다 보니 작게는 작심삼일로 끝날 때도 있고, 한두 달 하다 지겨워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다이어트도 1주일을 못 가고, 가계부 쓰기도 2주일을 못 가고, 밥 먹자마자 설거지하기도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운동도 매일 해야지 했지만, 일주일에 많이 해봐야 3일밖에 하지 못했다.
만약 감사 일기 쓰기도 백일 미션을 하지 않고 1년 미션으로 계획했다면 아마도 실패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3일씩, 7일씩, 한 달씩 등 작은 단위로 시작해서 장기간까지 해볼 작정이다.
이 자신감 뿜뿜이 사라지기 전에 뭐든 도전해야겠다.



[만남과 대화 글동네] 제자리 붓걸음

[만남과 대화 글동네]




붓글씨(캘리)를 쓴 지도 일 년이 되었다.
나는 작품 반이라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어머, 흘림 처음 썼다면서 왜 이리 잘 써요?”
강사님의 칭찬 소리에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중급반 사람들이 큰 붓으로 ‘해오름’을 썼다.
굵은 획과 가는 획이 조화를 이루어 멋진 작품이 되었다.

‘강사님이 쓴 줄 알았더니…. 제법이네.’
나도 분명 흘림체를 썼는데 저렇게 쓴 기억이 없다.
아무리 획을 그어도 굵게 나온다. 아니면 중간에 끊기거나.
흘림은 요염한 맛이 있는데 내 것은 아무리 봐도 돌쇠 느낌이다.

‘성격 탓인가?’
글씨도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다. 

“어머, 도자기에 글씨 쓴 것 좀 봐요. 이건 팔아도 되겠다. 장사해도 되겠어요.”
고급반 쪽에서 칭찬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로 봤다.

초벌구이한 접시 위에 멋들어진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 삐뚤어진 획 하나 없었다.
'아니 다들 붓 좀 잡았다 오셨나? 왜 이래?'

화선지에 그려진 내 글씨체를 보았다.
1년 배운 솜씨라고 하기엔 산만 그 자체였다.
강사님이 글씨를 먼저 알아보게 써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겉멋만 들었는지 글자가 문장 사이에서 우왕좌왕이다.
“오늘은 건질 글씨체가 없네요. 지난주에 무슨 일 있었어요?”
어느샌가 강사님이 오셔서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남들은 센스도 좋아서 확확 실력이 느는데 나는 아직도 감을 못 잡고 헤매는 것 같다.
강사님이 문제점을 짚어주어도 쓸데없는 부분만 열심이다.
나도 내가 답답하다.

때론 내가 영~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싶어서 고민도 된다.
괜히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가방에서 화선지를 꺼내다 작년에 쓴 글씨를 보게 되었다.
한글 처음 배우는 학생처럼 글씨가 삐뚤빼뚤.
오늘 쓴 글씨와 비교해보니 그래도 오늘이 나았다.
‘멈춰 있는 것 같았는데 꾸물꾸물 올라가고 있었구나.’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변화가 없을 리가 없다.

조급한 마음을 다시 접고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다시 붓을 들어 본다.

지금은 분명 글씨가 제자리걸음 같아 보여도
내년에 다시 글씨를 꺼내 보면 ‘어? 좋아졌잖아?’ 하며 놀랄지 누가 알겠는가.
오늘 그랬던 것처럼.



[만남과 대화 글동네] 식은 돈가스

[만남과 대화 글동네]






아침, 어제저녁에 먹었던 돈가스를 꺼냈다.
신랑이 한 입 깨물더니 얼굴이 더 못생겨졌다.
“이거 언제 산 거야?”
“어제 저녁때 맛있게 먹은 건데.”
“왜 이리 딱딱해. 돌 씹은 줄.”
그러더니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생긴 건 날고기라도 씹게 생겼는데 은근히 소프트 체질이다.

다들 출근, 등교, 등원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몸이 뒤틀리고 좀이 쑤신다.
역마살이 끼었나?
2주 전에 글감을 4개나 잡았으면서 또 도망가려 한다.
카톡카톡~
세탁이 다 되었다는 휘파람 소리~
세이렌이 따로 없다. 나를 유혹하는 소리여….

정신줄을 간신히 잡고 글을 쓰려고 하니 아, 도무지 써지지 않는다.
자판기를 두드리긴 하는데 대체 누가 두드리는 것인가.
글에 혼이 없고 맛이 없다.
혼을 골목 어딘가 두고 온 것 같다.
이를 악물어 뇌를 짜 본다.
얼굴만 못 생겨질 뿐, 글 찌끄러기도 나오지 않는다.

아, 이럴 줄 알았어.
뇌가 흥분하고 불이 났을 때 써야 하는데,
한-참을 뇌 저~ 구석에다 박아놓고
이제야 글을 쓴다고 꺼내놓으니
다 식어 빠진 돈가스 마냥 글 쓸 맛이 나지 않는다. 

돈가스야 비닐을 씌우고 데우면 촉촉해진다지만,
나의 뇌는 무엇을 씌우고 데워야 촉촉해질까.

때 지나면 판이 식는다.
묵혀두고 있는 것, 더 돌 되기 전에 어서 꺼내어 맛나게 써보자.
더 돌 되면 씹다가 턱 나갈 테니.



[만남과 대화 글동네] 아깝다 버블티

[만남과 대화 글동네]





1월 말, 첫째와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으로 가고 있었다.
중간에 환승하다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타로 버블티 큰 사이즈 3000원’
이게 웬 횡재냐. 버블티를 저 가격에?

“주안아, 저거 먹자. 엄청 맛있어.”
“엄마, 난 다른 거 먹을래.”
“음료 안에 쫄깃한 열매도 들어 있어.”
“정말? 열매가 쫄깃해?”
아들을 설득한 나는 냉큼 버블티를 시켰다.

내 손에 거대한 자주색 버블티가 들렸다.
아들에게 한입 먼저 주었다.
반응이 없다.
‘열매를 못 먹어서 그런가?’
빨대에 열매를 서너 개 끼우고는 다시 먹였다.
“엄마 원래 이런 맛이야?”
무슨 일인가 싶어 내가 먹어보았다.

아...
설탕과 타로가 섞이지 못하고 따로 노는데,
거기에 녹지 않은 열매까지.
얼음 입자가 동동 떠다니는 건 무엇?
이 겨울에.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마디.
‘아깝다. 삼천 원.’
주위를 둘러보니 그 가격대 음식이 눈에 팍팍 들어왔다.
‘식혜를 2개 사 먹을걸…. 편의점에서 밀크티 사 먹을걸….
차라리 옥수수나 사 먹을걸…. 삼각김밥 3개 값이다.’
머리가 복잡했다.

적은 돈도 제값을 못 하면 그리 아깝다.
큰돈이라도 제값을 하면 그리 귀하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는 버블티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끝까지 마시기로 했다.
버블티가 훌쩍이며 고마워할 것 같았다.
그래도 역시 맛은 찝찝했다.

찝찝한 맛이냐,
제값 하는 맛이냐,
주인이 와서 사가기 전에
맛깔나게 만들어놓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최고의 극한 사명 메시야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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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극한 사명 '메시야'


십자가 위의 메시야

과다출혈? 심장마비?
십자가 위 예수님의 직접적 사인(死因)은 무엇이었을까요?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질식사'였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채찍으로 등 전체가 찢겨진 상태, 기력까지 소진 된 상황에서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으니 호흡 자체가 온 몸이 찢기는 고통이었을 것이라 합니다.

가까스로 호흡을 이어가던, 숨이 막혀오는 그 순간까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강도를 향해 구원을 베 풀었던 숙명, 아니 차라리 '천형(天刑)'에 더 가까워 보이는 구원자로서의 사명!!

사명자의 '극한 상황'은 비단 십자가 위 마지막 장면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의를 품은 기성 종교인들의 끝 없는 공격을 감내하면서 '머리 둘 곳 없다'셨던 말씀 그대로 사적인 시공간 조차 갖지 못 한 채 24시간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삶이 공생애 내내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메시야'는 사탄이 집중 공격을 하는 대상이기도 할 것이지만 그 모든 따르는자보다 수 천, 수 만배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이겨 나와야 하는,
가장 낮은곳에서부터 기어 올라와야만 하는 그런 사명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세상에서 가장 구원받기 어려운 자'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어기제가 없었던 인자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왜곡 해석함으로써,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의식, 행위를 일컫는 정신분석 용어입니다.


누군가 돈 자랑을 하면 괜히 배 아프고 자존감 상해 하면서 자신의 다른 자랑거리(학벌이나 명예등)를 은근히 부풀려 끄집어 내는 것도 '방어기제'의 한 예(例)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방어기제'가 없는 분이셨음을 신약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해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일부러 왜곡하는 일이 없던 분입니다.
자기가 위협 받는 상황임이 뻔 한데도 굳이 병자를 치료하시며 '네 죄를 사하였다' 하심이나 '신성 모독' 으로 자신을 향 해 던질 돌덩이를 쥐고 있는 자 들 앞에서 '아브라함 이 전, 태초부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하심 등이 그러함을 알게 합니다.


범인(凡人)에게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그런 존재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지극히 '순수한' 인격체거나, 혹은 정말 누군가(3자)의 '대리인' 즉 완벽하게 하나님이 쓰시는 육이 되었을 경우에나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 해 봅니다.


여하튼 최고의 극한 상황에 내 던져 져 있으면서 방어기제 조차 없었던 예수, 메시야.

근래에 수 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야'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진정 이런 메시야로서의 삶(십자가에 매 달려 있는 순간까지 오직 구원의 사명을 이루려는, 내내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성삼위의 육신으로 방어기제 조차 없어 보이는)을 살고 있는지 보게 된다면 그 수의 많음으로 인해 오판할 일은 아예 없을 것입니다.



맞을자들의 책임

그래서 주의길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메시야의 길은 그 어떤 사명의 길 보다 험난한 노정이 됩니다.
이 점에서 준비해놓은 터전, 곧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 하여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던 '이방인'의 역사로 틀어졌던 '신약'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역사였습니다.


메시야를 보내는 것이 '하늘의 책임분담'이라고 한다면 그의 오심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책임분담'이 될것입니다.
하늘 역사에 있어 주 맞을 준비를 않고 있으면 아예 주를 맞지도 못 할 것이며,
맞았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좋게도 나쁘게도 결정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 책임의 중함이 한 없이 크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우리는 승리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우리는 승리했다

본문요한계시록 6장 2절, 17장 14절

요한계시록 6장 2절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요한계시록 17장 14절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기 때문에 이긴다.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자들도 이긴다.』 했습니다.

<메시아>는 <자신을 메시아로 절대 믿고 따르는 자들>을 타고 달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하나님을 믿게 해 주고, <죄가 있는 자들>이 회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생명을 죽이는 전쟁>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영적 전쟁>을 합니다.

고로 하나님은 땅에 메시아를 보내시고 <생명을 죽이는 전쟁>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로 신앙의 전쟁,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이기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메시아는 능력이 있으니 다 할 수 있지.”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주’ 라고 해서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하나 행하면서 해야 했습니다.

결국 <주>는 승리하셨지만, 다 이기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온 것이 아니라
<영적 무기>인 ‘말씀’과 ‘기도’로 연마하고 무장하여
<사탄, 마귀>와 맞서 싸우면서 이겼습니다.

권투경기를 보면 어느 때는 KO로 이기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상대 선수에게 엄청나게 맞다가 막판에 뒤집어서 이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기는 선수는 없습니다. <승리하는 자>도 다 맞으면서 이깁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와 함께하면 결국은 승리하게 되니 힘들고 어려워도 주와 함께 끝까지 행하여 승리하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