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자기가 불법과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벌을 주지 않으셔도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자기가 불법과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벌을 주지 않으셔도

자기 스스로 화를 받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기도 한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열왕기상 5장 18절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사람들은 ‘자기 차원의 것들’만 보고 느끼고 살아가니

‘그다음 차원의 것들’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비행기도 <차원, 고도>를 높이지 않으면 날아갈 수 없듯이,

사람도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수준, 자기 차원’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듣고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차원>을 높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차원>에만 있으면 그 차원에만 처하게 되고,

그 차원의 것만 보이고,

그 차원의 답만 받게 되고,

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누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배우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차원>은 ‘군대의 계급’과 같고,

‘공무원의 급수’와 같고,

‘회사의 직급’과 같습니다.


<자연 동굴>도 나라마다 형성된 대로 ‘등급’이 있고,

<문화재>도 생긴 모양대로 ‘각종 등급’이 있듯이,

인생도 ‘차원과 급’이 있습니다.
모두 ‘A급 인생, 최고 급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이면,

‘현재 차원에서 원하는 것’을 받게 되고,

 <한 차원>만 높아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한 차원>은 ‘조금만 더’ 하면 높일 수 있으니,

모두 ‘조금만 더’해서 <한 차원>씩 높이기 바랍니다!
차원을 높이면 옛것을 벗어나 변화되고,

기뻐하고, 희망이 이루어져 이상세계입니다.

나무를 키울 때도 나무가 한창 클 때 퇴비해 줘야 나무가 한 차원 더 큽니다.
이처럼 인생들도‘차원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한창 클 때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늦게 하면, 차원을 높였어도 그만큼 쓰고 누릴 시간이 없으니 빨리 차원 높이기입니다.

차의 속력을 내려 할 때도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고,

실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속력을 내야 하듯,

행하면서 차원을 높이기입니다.
이처럼 차원을 높일 때는 하나하나 행하면서 갖추면서 높여야 합니다.

<큰 차>만 산다고 되겠습니까?

‘운영할 능력’이 있어야 하듯이, <만사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서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돌과 재목’을 갖췄다고 했습니다.
<신앙 세계>도 그러합니다.
하나하나 갖추면서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지런히 갖추면서 때마다 차원을 높이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참지만 말고 거기서 나와라.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고린도후서 5장 1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골로새서 1장 5절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죄를 안 짓고 불의를 행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대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자기를 만든 사람이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가령, 자기 눈앞에 ‘이성의 행위’가 보인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기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의 영향을 받아서

순간 <생각>이 그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눈에 계속 보이는데 참으라고만 하면, 잘 참아지지 않습니다.
이때는 생각도 몸도 ‘그 주관권’에서 즉시 나와야 합니다.
그 주관권에 있게 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눈을 뜨고서 세상을 보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가령 혼자서 <형제들과 다투는 생각>을 하든지,

실제로 <형제들과 다툼>이 시작되면 참는다고 다툼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참지 말고, 즉시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몸도 마음도 빠져나오면,

 ‘참아서 안 되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 한 가지를 더 설명해 줄게요.
수류탄 알지요?
수류탄은 ‘안전핀’을 뽑고 던지면 터집니다.

안전핀을 뽑기 전에는 절대 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전핀’과 상관없이 수류탄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수류탄을 뜨거운 난로 옆에 놓고 열을 가하면, 안전핀과 상관없이 터집니다.

<마음과 생각>은 ‘수류탄의 안전핀’입니다.
안전핀을 꽂아 놓듯 <마음과 생각>으로 안 하겠다고 맹세해도

자꾸 <육>이나 <생각>에 열을 가하면,

결국 수류탄이 터지듯  결국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하게 됩니다.

흔히 “하루에 세 번 참아라! 모두 참아라!”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참아서 될 것>이 따로 있습니다.
<참아서 해결하는 방법>은 거의 실패합니다.

고로  <참는 방법>보다 <그 환경에서 나오는 방법>이 훨씬 좋은 방법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면 ‘마음’도 ‘몸’도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주관권, 불의의 환경>에 넣어 놓고‘참아라!’ 하며

조건을 세우게 하지 않으시고,

거기서 나오게 하여 보지않고,

듣게 하지 않게 하여 조건을 세우게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듣고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참기만 하지 말고

<죄의 주관권, 불의의 환경>에서 나와,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의 주관권 안>에 들어와서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목적은 목적이다.


[말 씀]정명석 목사


[본 문]마태복음15장: 21-28절
  “...(중략)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할렐루야!

오늘 성경 본문에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다니며 열심히 가시는데,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누가 소리를 질렀으나

예수님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시다가 제자들이 이야기를 하니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외에는 다른 사람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나는 이스라엘 민족, 그들을 구원하러 왔다.

부모가 자식을 잃어 버렸을 때 얼마나 찾기 원하느냐.

그것을 찾아주러 왔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 그것을 내가 찾아주러 왔다.

나는 딴 데 눈을 팔 시간이 없다.”

이것을 분명히 이야기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하나님께 찾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서 가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바짝 뛰어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 나 좀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나를 좀 도와주세요.”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자녀의 떡인데, 자녀에게 주려고 한 떡인데 너에게 어떻게 줄 수 있겠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러 왔는데”

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 때는 항상 자녀, 혹은 형제였습니다.

신약시대는 주종관계 시대가 아니라 형제입장입니다.
“내 자녀들, 형제에게 주려고 가지고 온 떡인데

어떻게 당신에게 줄 수 있겠냐 한번 생각해 보라.” 하고 깨우쳐 줬습니다.

“자녀의 떡을 어떻게 개들에게 주느냐.” 하셨습니다.
이방 사람들을 비유하여 개들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개들이라 비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고 사니 이방 사람들은 짐승같이 산다 했습니다.

나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에서 자식들이 있는데 부모를 불신하고 산다면 그 자녀를 두고 불효자다 합니다.

그런 얘기나 똑같습니다. 그때 술어로써는 맞는 말입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합당치 않다.
그래야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해가 되지,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식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옳소이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옳소이다.” 했습니다.
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냐 하면 자기 딸이 귀신들렸다고,

귀신을 쫓아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부탁하러 왔던 것입니다.

여자가 예수님의 말을 듣고서
“맞습니다. 주인이 떡을 먹다가 떨어뜨린 것을 개가 주워 먹으면 어떻습니까.

부스러기가 떨어졌는데 개가 먹으면 어떻습니까.
그 부스러기라도 주시옵소서.

그 귀한 것을 못 주면,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부스러기만 타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여자가 그러했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하기에 성경에 나왔습니다.
성경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뭔가 역대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자료들이고, 역사에 거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참, 네 믿음이 크다. 믿음이 정말 크다. 네 소원대로, 네 믿음대로 되라.” 하셨습니다.
그 후에 보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더라 했습니다.

부모들의 모정이 무섭습니다.

창피를 무릅쓰고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목적은 목적이다!!  
이렇게 목적을 위해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좌우하는, 모든 소원하는 목적,

자기 인생에 소원하는 최대의 목적들이 다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소원을 놓고 갈망하고 염원하며,

목적을 이루면 팔자를 고치니 그것을 소원합니다.

사람이 인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런 목적을 놓고서 사는데,

그 목적을 이루는데 그저 편하게 살다가 못 이루는 것과,

그 창피와 어려움, 힘든 일을 당하면서 이룬 것과 어느 편이 낫겠습니까.

‘고생을 해도 그 목적을 이루겠습니다!’  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 나는 고생하며 이루고 싶지 않아요.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목적이 운명을 좌우시켜 편안하게 사는 것도 그 목적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목적은 목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 그런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사람은 사람이다! 목적은 목적이다!

사람에게 “너 사는 목적이 뭐냐?” 하고 묻는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뜻을 위한 삶입니다.

뜻을 위한 지구상의 역사입니다.

이 본문에 있는 말씀도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제 평생 동안 자기 딸을 두고 기뻐하며 살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그 어려움, 그 잠깐의 고통이었습니다.

창피 당하고 했던 것은 잠깐의 고통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떻게 했든지 여러분들이 목적을 달성했으면 됐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고,

앞으로도 더 크게 이뤄져 가니까 소망이 이뤄지는 것을 감사하면서 계속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과정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 과정을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역사는 과정에서 단 것도 있고 쓴 것도 있지만 오묘한 것도 있으니

그 과정을 겪으면서 가도록 하십시오.

가정살이 하는 것도, 신앙생활 하는 것도,

교회에 나오는 것도 <목적>은 네 소원대로 되어라 입니다.
앞으로 계속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모두 목적을 달성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삼위의 능력과 은혜로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만든 자가 느낌을 많이 얻는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 멘토]


만든 자가 느낌을 많이 얻는다.
구경하는 자는 만들 때의 느낌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것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알고 깨닫는 대로 신적 차원에서 느낌이 강하게 온다.
모르고 못 깨달으면 조금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