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시간을 아끼고 영원한 것을 위해 써라.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시간을 아끼고 영원한 것을 위해 써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의 생각으로 시간을 써라.

본문 에베소서 5장 15-16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시간을 아껴 쓰는 자>가 ‘오래 사는 자’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쓰면
다른 사람보다 ‘많이’ 행하고,
그만큼 ‘많은 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래 살려고만 하면 시간도 가치 없이 쓰고 무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가 중합니다.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좌우됩니다.

곧 이 <시간>을 가지고,
<육>을 위해서도 해 놓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도 해야
그 삶의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아끼고 그 시간을 ‘하늘에 속한 시간’으로 쓰면
<큰 시간>도 얻고 <영원한 것>도 얻게 됩니다.
고로 ‘같은 시간을 살아도 오래 사는 자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수 같은 세월 속에 살아갑니다.
모두 인생 허무하지 않고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영원한 영광의 삶 살길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마음의 작품, 생각의 작품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마음의 작품, 생각의 작품을 보아라.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아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있다.

하늘 편이 어려움을 당할 때다.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정성 들여 행하여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하면 다 잘하는데

안 해서 제대로 안 되고 실패한다.

그러니 늘 하나님께

해 드린다고 생각하고

정성 들여 행하여라

행한 대로 자기 영이 예뻐지고

아름답게 된다고 생각하고 행하여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생각의 차원을 높이려면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생각의 차원을 높이려면

깊이 지혜로 보아라.

기도하고 영적으로 보아라.

그러면 미래까지 보게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생각이 다르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한 지구에 살아도

낮의 세계, 밤의 세계가 있듯이,

한자리에 같이 살아도

생각이 다르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하나님의 축복은 들어가도 축복 나와도 축복이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하나님의 축복은 들어가도 축복, 나와도 축복이다

본문신명기 28장 6절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축복은 짝의 축복입니다.

짝의 축복이란,
육적 축복과 영적 축복 두 가지 축복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본문 말씀과 같이
‘들어가도 축복’ ‘나와도 축복’으로 어디를 가도 받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합당하면 양면성 축복, 짝의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도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고로 환경을 초월해서 어디를 가든지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인물들 뿐 아니라 지금도 그러하니
모두 의의세계에 속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영원한 짝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 되면 됩니다.

이제 육으로도 영으로도 더욱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자기 일터로 가야 자기 할 일이 보인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자기 일터>로 가야 <자기 할 일>이 보인다.

본문 이사야 43장 19절

이사야 43장 19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일>은 ‘자기’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일터>로 가야 ‘할 일’이 보이므로 항상 <일할 자>가 ‘일’을 찾아가야 합니다.

저마다 ‘자기를 위해서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이 많고 많아도 깨닫지 못하면 할 수 없고, <할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일 자체에 문제가 생기고 손해가 갑니다.
고로 ‘할 일’이 생각나도록 기도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을 가지고 ‘영원한 일’을 행하면 ‘육’도 ‘영’도 형통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매일 <할 일>을 찾아서 행하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를 만들어 놓으면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철을 깎아 기계를 만들듯

자기를 만들어 놓으면

무엇을 하든지 잘되느니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죽음을 준비해 놓고 살아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인생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죽음을 완전히 준비해 놓고 살아야 된다.

영을 구원시키고 휴거시켜 놓고 살아야 된다.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길]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길]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정명석 목사가 군대 제대 후 그 이듬해인 스물여섯 살 때였다. 군에서 구사일생으로 20여 회 죽을 고비를 넘겨 살아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천명임을 깨닫고 노방 전도를 많이 하고 다녔다. 150리나 되는 전주와 70리 정도 떨어진 공주로 많이 다녔고 80리 정도 떨어진 대전 지역에도 나갔다. 어느 때는 12km 떨어진 금산으로 나갔고 4km 떨어진 대둔산 관광지나 진산에도 나갔다. 처음엔 금산과 대둔산같이 가까운 곳을 주로 걸어 다니며 전도를 했다. 그땐 너무 자주 나갔기 때문에 교통비가 없었다.
좀 떨어진 전주나 대전과 같은 곳에 전도하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새벽 3시쯤 되었다. 100리 길 혹은 150리 길은 60km나 되는 길인데도 정명석 목사는 걸어 다녔다. 차로 가도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그때만 해도 통행금지가 있던 시대였다. 밤 12시가 되면 노점상인 혹은 시내 모든 사람의 발길이 끊기게 되니 그때가 되면 결국 전도 일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갈길 비포장 길을 급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하는 농촌의 삶이고 신앙생활만으로는 끼니를 이어갈 수 없었기에 정명석 목사는 아침이 되기 전에 급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신앙을 반대할 때이고 어머니 역시 정명석 목사가 하는 일을 이해 못 할 때였다. 어느 부모라 해도 그 당시 정명석 목사의 일은 반대하였을 것이고 이해 못 하여 산이 울리도록 고함을 쳤을 것이다.
한 번은 정명석 목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전도를 마치고 진산을 거쳐 성황당 소롯길   앞섶골 재를 홀로 걸어 넘어오고 있을 때였다. 밤에는 온몸이 오싹거리는 밤길을 마치 스님이 주문을 외우듯 성경을 외우며 찬송도 하면서 걸었다. 그때 성황당 소롯길은 30년 된 낙엽송과 소나무로 밀림이 우거져, 혼자 걸으면 낮에도 머리끝이 조금씩 설 정도였다.
나무가 없는 요즘도 그 큰 고개를 넘을 땐 인가 한 채 없으니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무서운 산길이었다. 게다가 이 고개를 넘을 때 호랑이를 보았다는 마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에 밤에 이 길을 오르내리면 삐쭉삐쭉 머리끝이 섰다.
그 날 밤 열나흘 달은 중천에 떠 나무 사이로 비치고, 죽은 자의 넋을 달랜다는 산비둘기까지 울고 있었다. 정명석 목사는 큰기침도 하고 큰소리를 지르면서 그 큰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성황당 나무 정자 정상을 20미터쯤 남겨 놓고 “얼마나 남았나?”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옛 어른들은 밤길을 걸을 때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다고 했지만 정명석 목사는 밤에 산길을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 하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걸어 다녔기에 문제없었다. 오히려 정명석 목사는 자신을 두고 밤 호랑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앞섭골 정상 성황당에는 옛날에 큰 벼슬을 했던 사람이 심었다는 300년이나 된 팽나무가 서 있고 그 밑에 큰 넓적 바위가 깔려 있었다. 열나흘 달빛은 휘영청 부서져 내리고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밤이었다. 달 그늘 아래로 정상을 퍼뜩 쳐다보았다.
 “휴! 이제 20m 정도 남았구나.” 100리 길도 넘는 먼 길을 벌써 다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성황당 나무 밑 넓적 바위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새벽 3시에 누가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지? 밤길 가다 앉아 있는 것인가?” 하고 약간 무서운 마음으로 대여섯 발자국을 더 걸었다. 그때 정명석 목사의 마음에 이상한 전율이 흘렀다. 다시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고 아주 큰 짐승이 쭈그리고 앉아서 달밤에 걸어오는 정명석 목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자세히 보니 쭈그리고 앉아 있는 키가 꽤 컸다. 꼼짝도 하지 않고 주인을 맞는 말만 한 개처럼 앉아서 담대히 정명석 목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과 산이 맞닿은 선에 의해 보니 확실하고 또렷한 몸집의 짐승이었는데 몸집은 컸지만 날씬하였다.


그때 천천히 걷다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그 순간 정명석 목사에게 영감이 왔다.
“앗! 호랑이로구나.”
평소에 어머니께서 “너 밤길을 그렇게 걷다가 언젠가 호랑이를 만날 거다.” 했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그 날이 이 날이었구나. 거미줄에 매미 걸리듯 난 걸렸구나. 하지만 아직은 덜 걸렸어. 문제를 해결해야지.’ 생각했는데 예상치 않던 고함이 나왔다. “앗! 앗! 으악!” 그런데 그 소리가 속으로만 나왔다. 땀이 계속 났다. 그야말로 뜨거운 비지땀이었다. 옷이 젖어 버렸다. 뒤로 돌아서려고 발길을 옮기려 하였지만, 발이 천근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때 하나님이 생각났다. “하나님, 하나님!” 역시 그 소리도 속에서만 났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정말 심장이 놀라고 간이 콩알만 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위기를 피할 길이 없었다. 담대히 하나님을 부르며 앞으로 걸어가려 하였지만 앞으로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을 보니 몸을 움직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이제 걸어 내려오나 보다.’ 방어하고 싶어도 무기가 없었다. 정명석 목사가 손에 쥔 것이라고는 전도지 밖에 없었다. 만약 손에 몽둥이나 총이 있었어도 이미 마음이 꺾여 움직여지지 않아 다 소용이 없었다.
결국, 호랑이가 어떻게 하나 쳐다만 보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정말 장승같이 우뚝 선 채 마음만 살았지 몸은 시체였다. ‘달빛이 구름으로 다 들어가 버렸으면 호랑이도 안 보일 텐데…’ 했지만 무서우니 정신이 차려지고 더 잘 보이기만 했다.
정명석 목사는 기도했다.
“하나님 저 호랑이 좀 속히 끌고 가 주십시오. 하나님밖에 이 밤중에 내 문제를 해결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다음에 회개하겠습니다. 지금 회개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 떨리는 마음에 지은 죄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제발 저 호랑이 좀 속히 없애 주옵소서.”
혹시 호랑이가 걸어 내려오지 않을까 해서 눈을 뜨고 기도했다. 너무도 짧은 기도였다. 그런데 그때 호랑이가 일어나 정상에서 반대쪽으로 넘어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정명석 목사에게 무서움이 사라지면서 힘과 담대함이 왔다. 소리를 지르니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힘을 다해 나머지 20m를 올라왔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 옷이 비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사람 몸에 이렇게 땀이 많단 말인가.’ 하고 또 하나를 깨달았다. ‘인간 몸에 때도 많고 땀도 많구나.’ 그제야 정명석 목사는 호랑이한테 놀라면 옷이 땀으로 비 맞은 듯이 젖고 사족이 굳어 버린다는 말을 체험케 되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더니 하나님이 나로 호랑이 체험을 뜨겁게 시킨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왜 나에게 이런 밤을 주었을까?’ 정명석 목사는 평소 정상에 오르면 앉던 넓적 바위 위에 앉았다. 힘이 빠지고 그야말로 맥이 풀려 버렸다. 기력이 백 살이나 먹은 노인이 된 것 같아 잠깐 누웠다. 그 자리는 바로 아까 호랑이가 앉아 있었던 반드름한 장소였다. 순간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떠보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일어나 400m밖에 남지 않은 집으로 걸어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어지지 않았다. 정명석 목사는 다시는 이런 밤이 없기를 기도하며 집을 향해 갔다.
정명석 목사는 그 모든 일이 추억으로 남아 ‘나만이 걸어온 그 길’을 쓰게 되었고, 제자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그 체험에 감동한 제자들은 후대에 귀한 간증거리가 되게 하자며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으로 영광 돌렸다. 
“아! 그 날 밤 나만이 걸어온 사망의 음침한 계곡이어라!” 하지만 그 호랑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정명석 목사에게 목자가 되어 주를 영원히 전하는데 위대한 간증거리가 되었다. 간증할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생각이 나침판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인생 잘못 따지고 가면

딴 방향으로 간다 생각이 나침판이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운전하듯 잡고 행해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육도 자기 삶도 그냥 두고서

잘되는 쪽으로 가는 경우는 없으니

운전하듯 늘 자기 육신도

마음과 생각도 잡고 행해야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뇌를 가지고 기쁨과 흥분으로 행함으로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뇌를 가지고 기쁨과 흥분으로 행함으로

육을 개발하여

자기 육과 혼과 영이 잘되는 데 쓰고

삼위와 사랑하며 영적으로 사는 데 써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누구든지 잘하면 잘되고 못하면 안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누구든지 잘하면 잘되고 못하면 안된다.

그러니 항상 잘해서

잘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하루를 살아도 잘하고자 하는 때만 잘하며 살고,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하루를 살아도

잘하고자 하는 때만 잘하며 살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잊고 살 때는

잘 안 된다.

잘 안 되니, 잘 산 표가 안 난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주(主)는 고난 후에 영광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씀_설교말씀

주(主)는 고난 후에 영광

본문누가복음 24장 25-27절

누가복음 24장 25-27절『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성경 본문에 미련하여 선지자들의 예언과 성경을 더디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 즉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 후에 영광의 역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라도 죽도록 충성해야 되나니,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역사>는 <고난> 후에 ‘고난의 역사’가 오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역사>는 <고난> 후에 ‘영광의 역사’가 찾아옵니다.

영광의 역사란 영적인 역사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역사란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머리이며 영인 그리스도를 따라 행하는 역사를 말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수만 가지의 기쁨의 흥분제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성경에 "네 마음 천국이다.

생각대로 기쁘고 흥분된다."

하였다.

마음과 생각은

수만 가지의 기쁨의 흥분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