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만남과 대화 세푼칼럼]
“내가 몰랐을 때는 부러워만 하고 애간장을 태웠었지만
이제는 내가 할 줄을 알으니 새 노래 지어 천년 동안 흘러가게 하리라”
인생의 길이는 '100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루'입니다.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 '인생'이기에 매일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실천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대하는 "바른 자세"입니다.
이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하는 데 폭군을 몰아 내고 중국 은(殷) 나라를 세운 탕(成湯) 임금이 매일 아침 대하는 '대야'에 이 글귀를 새겨두고 씻을 때마다 마음에 되 새겼다고 합니다.
'이 나이 먹고 뭘...' 하는 그 날 부터 나는 늙는 것이고,
'하찮은'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낼 때 내 인생은 저물어 버린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님의 삶의 자세
삶 속에서 성삼위 하늘께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실천 중에 또 새롭게 배우고 또 새롭게 배운 것을 실천하는 일신우일신의 자세.
그리고 그 속에서 이 모든 배움이 하늘로부터 났음을 ‘증거’하고 그로 인해 더욱 일편단심 성삼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삶
필자는 십대 때부터 이런 삶의 자세를 평생 영위하고 계신 정명석 목사님을 지켜 봐 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몸부림 치고, 배워 알게 된 뜻을 실천하며 증거하고 하늘 사랑하는 일에 지성(至誠)을 다 하고 계십니다.
근데 간혹 오해하는 자들이 있어 ‘거짓된 삶을 살고 있다’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건 1주일 정도는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며 1달, 혹 1년 까지 그리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고희(古稀)에 이르도록 한 평생 동일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이는 결단코 가식 된 삶이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 된 삶이다’ 주장하는 자들은 분명 오해를 하고 있거나 다른 저의(底意)가 있어 오히려 자기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늘을 대하는 자세
금주말씀 통해 하늘 뜻을 알고 살면 하늘을 대하는 자세부터도 달라진다 하셨습니다.
하늘을 잘 몰랐을 때는 그저 ‘두렵고 어렵다’ 땅에 납작 엎드려 대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땅에 엎드린 자세가 굳어버렸으니 하늘을 더 제대로 못 보게 된 것인데
오히려 한술 더 떠 하늘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자기네 것들과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고 불신 하기까지 하는 것 입니다.
자기 자세가 바른 것이라 우기면서 다른 사람의 자세를 비판하고 꾸짖는 경우 자기 눈 속 들보를 못 보고 타인 눈의 티를 갖고 트집 잡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시대의 때를 따라 더 가까운 사이가 되면 그 관계성에 따라 자세가 달라질 것이 분명한데, 자세를 바꿔야 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 대하는 몸의 자세가 틀어 진 사람들은 생각, 마음, 신앙의 자세에 있어서도 몸 자세가 틀어진 것 같이 잘 못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니 문제가 참으로 심각한 것입니다.
나 역시 몰랐을 때는 애간장이 탔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 드리자면 내가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을 때 성삼위의 애간장은 더욱 탔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나도 알게 되어 할 줄을 알게 되었으니 하늘 앞에 바른 자세를 취하고
성삼위를 증거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노래도 천 년 동안 흘러가게 해야겠습니다.
'그 날'에는 모두 다 감격 해 눈물 지을 것입니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